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02/11 19:13:29
Name sylent
Subject [sylent의 B급칼럼] ‘탈정치적’으로 바라본 임요환
[sylent의 B급칼럼]은 월드컵보다 스타리그를 좋아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량전 보다는 깜짝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올인’ 전략에 환호하는 sylent(박종화)와 그에 못지않게 스타리그를 사랑하지만, 안정적인 그리고 정석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정착되는 그날을 꿈꾸며 맵과 종족의 밸런스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는 왕일(김현준)이 나눈 스타리그에 대한 솔직담백한 대화를 가공해 포장한 B급 담론이다.


[sylent의 B급칼럼] ‘탈정치적’으로 바라본 임요환


묵은 상처를 다시 한 번 벌려 젖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는 [EVER 2004 스타리그]의 빚을 청산하지 못한채, 스스로 낳은 ‘괴물’ 최연성 선수를 [신한은행 2005-2006 스타리그]의 준결승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촘촘한 전장 속에 무엇에 홀린 듯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주하는 두 선수의, 지옥처럼 괴롭고 천국처럼 지루했던 승부를 팬들은 탐미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안경을 벗은 임요환 선수가 최연성 선수에게 힘든 악수를 청했을 때, 맞잡은 두 선수의 손을 통해 테란이라는 종족의 미래가 올드보이로부터 뉴가이에게 전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황제의 분발은 여기까지구나.’ 하지만 이내 이런 기분에 익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 ‘사신’ 오영종 선수에게 [SO1 2005 스타리그]의 왕좌를 넘겨주었을 때도, ‘가림토스’ 김동수 선수와 ‘영웅’ 박정석 선수에게 [스카이 스타리그] 시리즈를 모조리 양보했을 때도 나는(혹은 우리는)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했었다. 거울을 보고 대답을 요구해보자. 왜 그랬을까?

그는 너무 오랫동안 정상에 있었고, 여전히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은, 끊임없는 전복을 통한 권력의 균형을 바라는 많은 스타리그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경기력이나 승부에 관련된 무엇 이외의 요소를 개입시켜 선수를 바라보는 것만큼 어리석고 때로는 폭력적인 태도도 없지만, 우리는 종종 임요환 선수에게 그래왔던 것이다. 마치 수학 공식과도 같은 임요환 선수의 치밀한 전략과 현란한 컨트롤에 우리는 충격을 받거나 구토를 하거나 화를 내거나 눈을 감았던 것이다.


가변(可變)테란

세상에는 규정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수 유닛 컨트롤에 능하여 저그를 곧잘 잡아내지만, 만성적인 물량 부족으로 프로토스에게 약한 테란 플레이어’라는 굴레로 임요환 선수를 묶어두려 한다. 이는, 어느덧 프로게이머의 평균연령을 훌쩍 넘겨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테란’에 관한 논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장을 빨리 정의 내리고, 그 다음 쉽게 안심하고 싶은 호사가들의 희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임요환 선수를  규정하려고 하는 순간, 임요환 선수는 움직이는 타깃으로 변해왔다. 그러니까, 진화다. 임요환 선수는 ‘스타리그’라는 생태계에 맞게끔 스스로 진화해왔다. 그래서 임요환 선수의 특징을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요환적(的)이라고 부를만한 특징을 굳이 끄집어내자면, 정치적으로 불공정해 보일 만큼 테란에 특화된 변화무쌍하고 날카로운 전략과, 컨트롤에 대한 집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멈추지 않는 전략제조기

임요환 선수는 변화하는 것, 이제 막 징후를 드러내는 무언가에 더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것이 단지 소재주의라고 비판을 한다 해도, 그의 예민한 더듬이가 누구보다 앞서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마린 1기를 운용해 러커를 잡아내면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아키텍처를 증명한 그는, 결국 사멸해가는 테란을 심폐소생시켰고, 이후 ‘815대첩’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인내와 끈기를 겸비하였음을 보여주며 수많은 감성적 경기를 통해 팬들을 매료시켜왔다. 임요환 선수는, ‘온게임넷’이 낳은 테란의 미래였던 것이다.

언제나 안정보다는 충돌을, 정착보다는 개척을 추구했던 임요환 선수는 필연적으로 몇 차례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영웅’ 박정석 선수와 ‘몽상가’ 강민 선수 그리고 ‘투신’ 박성준 선수는 차례로 ‘물량 부족’과 ‘아이디어 고갈’ 그리고 ‘노화된 컨트롤’이라는 불명예를 임요환 선수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라이벌의 등장은 임요환 선수에게 초창기 스타일로 선회하며 자신이 끌어온 다양한 전략적 레퍼런스의 색깔을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에 더해 최연성 선수, 전상욱 선수라는 좋은 동료들과 테란의 철학을 공유한 덕분에 해저탐험처럼 신비롭고 심오한 자신의 잠재력을 경기에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테란 환상록

어쩌면, 첫 번째 골든 마우스의 주인공은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투신’ 박성준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타리그에서 임요환 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최초’이거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두 번의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이라는 과거의 영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새로운 희망을 심기 위해서라도 절망을 베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임요환 선수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번 굳게 매듭지어야 한다.

숨가쁜 ‘속기 바둑’ 한 판을 마친 임요환 선수는 이제 또 다른 ‘대국’을 준비할 것임에 틀림없다. 노력에 한계를 부여하지 않는 임요환 선수는 언제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한빛소프트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우승할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임요환 선수에 대한 기대는 종기와 비슷한가보다. 뿌리를 뽑기 전에는 계속 발열하며 부어오른다. 그러니, 저항은커녕 투항할 수밖에.

상상의 갑옷을 입고 나선 이 로맨틱 테란의 환상록을 언제쯤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아마 다음 스타리그이겠지.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10:51)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22 18:10)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6/02/11 19:24
수정 아이콘
이제 sylent님의 군생활도 서서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시겠네요. 안 그래도 어제 상심해서 싸고 누웠던 참이었는데, sylent님의 좋은 글을 보고 크게 위안을 얻었습니다. 어서 무사히 복무를 마치시고 좋은 글들 더 자주 볼 수 있게 해 주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06/02/11 19:29
수정 아이콘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맞는 듯 싶습니다
난언제나..
06/02/11 19:55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임요환선수가 지금까지 해온것을 생각하면 골든마우스 요환선수가 최초로 받았으면 좋을텐데...
천재여우
06/02/11 20:00
수정 아이콘
솔직히 그에게서 든든한 강력함이란 건 찾아 볼 수 없지만
무언가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항상 갖게 합니다.
꾸준한 논쟁의 중심에 있지만 그래도 계속 이런 성적을 내는 건 보면 역시 임요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듀얼도 너끈하게 통과하길 빕니다.
에 그리고 역시 sylent님이시군요~~
06/02/11 20:40
수정 아이콘
역시 멋진글...
임요환 선수는 은퇴후 T1 코치진으로 가도 좋을것 같습니다만...
Judas Pain
06/02/11 20:44
수정 아이콘
표현의 나태한 창조력에 대한 반성...
사일런트님 글을 보면 항상 제가 느끼는것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포츠 칼럼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My name is J
06/02/11 21:05
수정 아이콘
상상의갑옷을 입고나선 이 로맨틱한 테란의 환상곡....
멋지네요-

골든마우스의 주인공이 누가 되든- 처음이든 두번째든, 임요환 선수가 주인공이었으면 합니다.
팬은 아닌데- 그정도는 그가 받아도 될것 같은- 뭐 그런것이지요, 으하하하-
06/02/11 21:13
수정 아이콘
강민팬-->최연성저주-->최연성키운임요환저주-_-;;라는 패턴때문에
게임에서는 임요환선수의 상대편을 항상 응원하지만 골드마우스의 첫번째 주인공은 임요환선수였으면 합니다. 마린 한마리 아니 SCV가 한마리 남을때까지 컨트롤하는 그의 열정에 감동받았기 때문에..
마녀메딕
06/02/11 21:26
수정 아이콘
글 너무 잘쓰셨네요.
임요환선수는 '스타리그 라는 생태계에 맞게끔 스스로 진화해왔다' 이말 완전 공감합니다.
" 더이상 극강의 플토는 극복할 수 없을 거야"
" 피씨방 예선 극복할수 없을거야"
"물량극복? 어렵지 않을까?"
팬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더 노력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듀얼도 꼭 통과하길 바랍니다. 강민선수와 한조라 벌써부터 긴장됩니다.
06/02/11 21:27
수정 아이콘
[임]은 단지 게임을 했을뿐
Frank Lampard
06/02/11 21:33
수정 아이콘
임요환은 최연성과 경기를 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의 70%도 채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군요. 다른 상대들과 할때처럼 어떻게 이길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지 않을까에 고민하는 것 처럼 보인다면 오버일까요.
마치 90년대 초중반, 이창호 기사를 상대하는 조훈현 국수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당시에도 대회의 고비때마다 이창호를 만나면, 조훈현은 평소에 하지않던 실수도 남발하고 경기력이 엉망이었죠. 이창호가 최고로 올라가는 시점에서 조훈현 대 이창호의 경기가 빈번해졌고, 그런 상호간 부담때문에 결국 이창호가 조훈현의 저택에서 나오게 되지만요.
최연성이라는 패왕을 만들어내면서, 4U와 SK텔레콤에 우승트로피를 여러차례 안겼지만, 왠지 임요환 개인의 커리어에 있어서는 두어번의 우승을 통산 손해볼것같은 느낌.
루이니스
06/02/11 22:34
수정 아이콘
임요환선수가 골든마우스를 받지못하고 군대를 가신다면 정말 임요환선수를 미워(?)할것 같아요.....그리고 이기적인 팬인지라 언제나 요환선수가 처음이었으면 하는바람이....^^;;;
06/02/11 23:25
수정 아이콘
저 역시..

언제든지,
골든 마우스는 임요환 선수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
미라클신화
06/02/11 23:35
수정 아이콘
박성준선수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만.. 골든마우스는 개인적으로 임요환선수가 탔으면..; 정말 소원이없겠네요ㅠ.ㅜ
아케미
06/02/12 12:10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sylent님도 어느새 제대가 그리 멀지…… 않으신 거 맞나요? ^^;
06/02/12 12:34
수정 아이콘
아케미님 // 100일 남짓 남았습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죠. -_-
포켓토이
06/02/12 18:11
수정 아이콘
골든마우스는 이윤열 선수의 것. 절대 양보할 수 없음.
06/02/12 19:48
수정 아이콘
그렇죠. 골든마우스에 어울리는 선수는, 임요환선수 제외하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른 선수의 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명랑리버
06/02/12 23:11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sylent님 글을 볼수 있어 좋았어요.
뇌에 신선한 산소가 주입된 기분 ^^
06/02/13 11:25
수정 아이콘
살렌트님 마지막 포상이라도 받고 나오신 건가...
You.Sin.Young.
06/02/13 11:30
수정 아이콘
기다려온 글이네요. 참 대단한 글입니다!
물빛노을
06/02/13 12:01
수정 아이콘
투신은 이래저래 악역-.-
좋은 글 잘봤습니다.
06/02/13 13:09
수정 아이콘
[sylent의 B급칼럼]에 대한 정의를 내리신 글이 아주 담백하네요^^
이 글은 아무래도 추게로 이동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Jay, Yang
06/02/13 13:38
수정 아이콘
BoxeR 화이팅!
스타벨
06/02/13 16:00
수정 아이콘
8강 3주차 2경기 중반쯤 차마 결과는 보지못하겠기에,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청은 이것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고, 이젠 듀얼이나 시청해야지 하며 채널을 돌려버리고 말았답니다.

상심한 맘, 이 글이 위안이 됩니다.
06/02/22 19:28
수정 아이콘
추게 입성 축하~!! -_-;;
06/02/23 15:52
수정 아이콘
왕일님도 한번 직접 쓰셔서 입성 하셔야죠. ^^
Sawachika Eri~
06/02/23 21:20
수정 아이콘
임요환 선수 화이팅!
이관호
06/02/25 19:49
수정 아이콘
아 이번엔 정말 준우승 그만하고 투신을 꺾어서 골든 마우스를..
투신 최근 토스 잡는거 보면 너무 무섭습니다.
웬지 최초 골든마우스를 거머질것같은...
최연성 선수 파이팅ㅡ_ㅡ;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430 박성준, 그 절대적인 폭력의 미학 [113] Judas Pain22019 06/02/20 22019
429 [잡담]프로게임계에 "이렇지 않은" 선수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41] Daviforever15763 06/02/20 15763
428 그는 이제 두려움을 알았습니다. [26] 구름비12280 06/02/18 12280
427 키보드 이야기 [36] 김연우13057 06/02/15 13057
426 눈보라속의 질주, 쇼트트랙 100배 즐기기(좀 깁니다..) [39] EndLEss_MAy10037 06/02/14 10037
425 [sylent의 B급칼럼] ‘탈정치적’으로 바라본 임요환 [29] sylent12590 06/02/11 12590
423 만화캐릭터+프로게이머 합성입니다(자작) [111] 악동이™22656 06/02/13 22656
422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놈 [32] 그러려니14267 06/02/06 14267
421 김완섭 사건을 통해서 본 악플문화 [20] Neptune11058 06/02/08 11058
420 PGR21이 변하길 원하신다면. [29] 김연우8285 06/02/06 8285
419 [연우론] 3장 수비형 타파를 위한 세가지 발상 [100] 김연우15931 06/01/31 15931
418 [yoRR의 토막수필.#15]가난한 형제의 동전 하나. [34] 윤여광7270 06/01/23 7270
417 마재윤, 이 시대가 원한 저그 [80] Judas Pain25329 06/01/13 25329
416 (지)랄 [59] 공룡16770 06/01/12 16770
415 마이너. [38] Kemicion8942 06/01/12 8942
414 2005년 온게임넷 공식맵 및 맵제작팀 활동 결산 [40] 김진태14609 06/01/09 14609
412 주간 PGR 리뷰 - 2005/12/24 ~ 2005/12/30 (마지막) [65] 아케미10212 05/12/31 10212
411 개인적으로 꼽은 2005 E-Sports 10대 사건(10) [39] The Siria13855 05/12/29 13855
410 지상 최후의 넥서스 완결편 - PGR 팬픽 공모전 대상 수상 소감. [57] unipolar16792 05/12/21 16792
409 줄기세포와 스타크래프트 [48] 짱가11207 05/12/18 11207
408 [연재] OLD BOY (올드보이) #1 [38] SEIJI9919 05/12/20 9919
403 캐리어 가기 싫은 이유 [120] 김연우60803 05/12/13 60803
402 박정석,강민,박용욱에 관한 단상 [113] Judas Pain28683 05/11/21 2868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