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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19 16:41:39
Name 트린
Subject [내왜미!] 2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9-끝)








수성은 은실의 씩씩거림이 잦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제 생각엔 중국인 말고 근처 사는 베트남 인 아저씨가 주말을 축하하려고 폭죽을 터
뜨린 것 같아요. 그 아저씨 잘 그러거든요. 매직로망캔들이라고 15연발짜리 많이 사요. 불꽃
이 하도 멋지길래 물어봤죠. 상관없어요. 내다보시든가 경찰에 신고하세요. 하지만 궁금하군
요.”
“뭐가요?”
“국내에서 디앤디 미니어처, 워해머, 메크 워리어, 히어로 클릭스처럼 다양한 시스템을 플레
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가뜩이나 이미지 안 좋은 게임 속에서도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이 소수일 수밖에 없고 소수의 취미는 존중받지 못합니다. 앞으로 남녀
노소 구분 없이 게임을 즐기는 날이 오면 모를까 그 전에는 우리들은 아마 계속해서 이해 못
할 덕후 취급을 계속 받을 거예요.”


양익이 끼어들었다.


“핸드폰 게임이 대 유행이 될 수도 있죠. 플랫폼으로서는 최고에요.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까.”


수성이 코웃음을 쳤다.


“양익님 소설 쓰시네요. 그런 날은 절대 안 올 거고요. 하여간 이곳에 모인 분들은 열정과 집
중력이 있어요. 있을 수밖에 없어요. 룰 번역해야지, 룰 공부해야지, 사야지, 조립해야지, 색
칠해야지, 들고 다닐 가방 구해야지, 플레이어 구해야지, 모임 장소 구해야지 게임 한 번 하
려고 할 일이 태산이잖아요.
아스 님이 연락도 없이 찾아오셨을 때는 전 개인적으로 무척 기뻤어요. 여자 플레이어가 생기
는 게 쉽……”


원이 등 뒤에서 재빨리 옆구리를 찌르자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열정적인 플레이어가 생기는 게 쉽지 않잖아요. 별로 친하지 않은 플레이어 집까지 찾
아올 정도로 아스 님은 집중력 있는 플레이어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계속 이런 일이 생기면 말이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재밌게 놀다 보면 억지로 드러내지 않
아도 아스 님에게 자연스레 설득력이 생기거든요? 그럼 아스 님은 아스 님 친구 분을 자연스
럽게 데려오시게 되겠죠? 보통 같은 사람들끼리 친해지니까 친구 분도 아스 님처럼 열정적인
분이어서 또다시 친해지고, 그러다 보면 플레이어들이 다양해지고, 풍성해지고.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면 소수의 취미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양지에 떳떳이 드러나는 거죠.
테니스나 골프처럼 쉽게 말하고 설명할 수 있는 취미가 되는 거예요. 사실 그게 제 생일 선물
로 주어진다면 최고로 좋겠어요. 정말 커다란 선물이죠.
그런 꿈을 꾸었는데 역시 아닌가 봐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가 봐요. 별일도 아닌 것 같은
데 파티에 집중도 안 하시고. 전 좀 실망이에요. 아스 님은 원이 말대로 다른 목적이 있어서
오신 건가요? 그런가요?”


젖소 옷을 입은 수염 남자가 슬픈 눈을 하였다. 은실은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슈렉 고양이가 해야 통할법한 애교를 떨면서 장광설을 늘어놓다니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그래도 말은 맞는 구석이 있어.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어. 이렇게 큰 소란이면 누군가 틀
림없이 신고를 하겠지. 그래, 사과하고 가만히 있어야겠다. 어디까지나 연쇄살인사건을 해결
해야지, 사소한 사건에 나설 필요가 뭐 있겠어.’


은실은 단체 소개팅을 하고 싶다는 불순한 희망에서 시작된 듯한 수성의 일장 연설을 받아들
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그 뒤의 폴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젖소 옷을 입은 수염 남자와 그
녀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애교어린 눈짓으로 서구권 사람답게 능숙한 윙크를 했다.


“아오,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은실은 혼자만 아는 소릴 외치며 옥탑방 원룸 문을 활짝 열었다. 핸드폰과 권총을 양손에 들
려던 그녀의 다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고양이 이마만 한 옥상에 웬 검은
양복쟁이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은실은 물론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예상외의 장면에 놀라 얼어
붙었다.
양복쟁이들은 선글라스 차림에 떡대가 기본이었다. MP-7 기관단총을 갖춘 이들이 지배적인
판에, 소음기가 달린 H&K사 USP 45구경 자동권총을 든 선두의 양복쟁이가 모토롤라 무전기
에다 외쳤다.


“‘먹보’ 확보! 푸른 번개 요청!”


3초도 안 되어 지붕 위에서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 옥탑방을 뒤흔들었다. 선풍기를 한꺼번에
수십 개 정도 튼 것 같은 강풍이었다. 사람들이 얼굴을 가렸고, 책장 앞에 놓여 있던 방 안의
수많은 책과 미니어처 보드게임 말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난장판 속에서 선두의 양복쟁이들
이 자신의 몸으로 은실을 감쌌다. 그녀가 양복쟁이의 늪으로 사라지자마자 어두운 밤하늘에
서 굉음과 함께 한가운데를 겨냥해 줄사다리가 내려왔다.




*



X와 칭링의 대치는 멀리서 날아오는 대전차 로켓 한 발에 막을 내렸다. X는 살고 싶은 욕구와
인간의 근육이 허락하는 한, 칭링은 초자연적인 존재답게 그보다 조금 여유 있게 한 발 앞서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오는 방향에 반대되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미군의 보병용 휴대용 대전차 로켓 M72 LAW 탄두가 달려들었다. 탄두는 규칙적인 회전 속에
화려하게 핀 꽃잎 같은 안정판을 자랑하며 다세대 주택 2층 벽에 직격했다. 폭발과 섬광, 연
기가 가득하며 파편이 사방으로 날았다. 특히 반대편 수성의 옥탑방 쪽으로 튄 파편들이 요란
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고무 슬리퍼를 신은 남 고딩이 도저히 알 길 없는 이유로 파괴된 변기
와 욕조, 외벽에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만화책을 떨궜다.
칭링은 로켓탄이 날아온 방향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뭐야!”


칭링은 고함과 동시에 머리를 아주 약간 왼쪽으로 움직여야 했다. 총알이 왼쪽 뺨을 길게 찢
으며 뒤로 날아갔다. 저격이었다. 그녀는 2탄을 맞지 않으려고 재빨리 근처 석조 기둥에 몸을
숨겼다. 워낙 덩치가 크고 윤곽이 울퉁불퉁하여 전부 숨기는 데 애 좀 먹었다.
그녀는 괴물 같은 몰골을 한 채 귀여운 말투로 투덜거림 반, 서러움 반을 섞어가며 중얼거렸
다.


“너무해. 왜 나만.”


칭링은 중얼거린다고 한 건데 역시 덩치가 크니까 바닥을 진동판 삼아 말이 쩌렁쩌렁 울렸다.
뒤에 있던 X가 그 소리를 듣고 얄밉게 웃으며 한마디 하려고 3층 계단 모퉁이에서 머리를 내
민 순간 같은 곳에서 총탄이 발사됐다.
X는 하마터면 즉사할 뻔했다. 코앞에서 벽돌에 부딪힌 총탄은 자신은 도탄되는 대신, 날카로
운 벽돌 조각을 왼쪽 눈 바로 밑에 쑤셔 박았다. X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삼키려고
최대한 애쓰며 뒷걸음질 쳤다. 누군지 몰라도 로켓탄을 한 번 쏠 수 있는 작자들이라면 두 번
은 안 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번엔 칭링이 웃을 차례였다. 맑은 목소리로 킥킥거리던 칭링은 곧 징그럽게 생긴 큰 귀를
쫑긋거리며 골목에 귀를 기울였다. 골목 건너편, 그러니까 수성의 집이 있는 쪽의 골목에서
구둣발자국 소리가 요란했던 것이다. 발소리는 좁고 복잡한 골목에 어지럽게 울리며 점차 가
까워졌다.


“영차, 영차.”


칭링은 잘린 철문 철창 포함 주위의 잡동사니를 그러모아 완력으로 구겨서 사람 머리통만 한
공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을 낮은 담장 너머로 잘 조준했다가 골목 사이로 첫 번째
그림자가 얼핏 비쳤을 때 공성전에 동원된 투석기가 돌을 쏘듯 거세게 던졌다. 볼링 핀이 볼
링공 맞듯 두 명이 이 급조 무기에 맞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선두의 양복쟁이들은 MP-7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사망자를 끌어서 치우고 수성의 집으로 들어가는 나머지 동료들을 엄
호했다.
칭링은 총탄이 어두운 주위에서 불꽃을 피우는 가운데 그들의 행색을 천천히 바라보며 생각
에 잠겼다.


‘무장한 폼이나 규모가 보통이 아니야. 그런데 왜 수성이네 집에 몰려가지? 수성이 뭐 했나?’


칭링은 잠시 자신들 같은 뱀파이어들을 알고 지내기 때문에 눈앞의 괴인을 포함해 이 모든
소동이 벌어진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니까 일테면 초자연적인 존재를 꼭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쳐놓은 덫에 칭링은 물론, 고수성도 협력자로 분류되어 걸린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의도를 가진 이들이라면 얼마든지 일을 작고 편하
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굳이 이렇게 시끄럽고 요란스럽게 벌일 필요가 없었다.


‘그건 확실히 아니야.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어쨌든 칭링은 이곳에 가만히 있다가는 결국 포위를 당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리를 해서
라도 빠져나가야 했다.
칭링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너 내가 기억했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음 그때 보자!”
“뭐야. 갑자기 어디 갈 사람처럼 왜 그래. 둘 다 못 빠져나가. 큰일 났어.”


X의 이죽거림을 무시하고 칭링은 신체 내부의 모든 정기를 끌어모아 한 방에 써 버렸다. 칭
링의 흉악했던 덩치가 큰 덩어리로 분열하면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처음엔 파열 같
던 분열은 점차 작은 알갱이로 변하더니 이내 분자로, 그러니까 가장 가볍게 변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X는 그 광경을 입을 떡 벌리고 바라봤다. 보라색의 기분 나쁜 기체 덩어리가 하늘로 떠오르
는 시점에 때맞춰 목표물이 사는 옥상 위에 헬기가 굉음과 풍압, 진동을 사방에 퍼뜨리며
제자리에 멈추었다.
칭링이 변한 안개가 곧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X가 중얼거렸다.


“별일이 다 있다, 진짜…….”


X를 한가하게 두지 않으려는지 골목 곳곳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VIP 확보했대! 움직여!”
“포위망 좁혀!”
“놓치지 마!”


칭링보다 인간 세상에 해박할 수밖에 없는 X는 도시에서 아무렇지 않게나 로켓을 쏠 수 있는
조직,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총기를 운영하는 조직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수성 놈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었나!’


대체 어떻게? 왜? 덕후 인간문화재라도 되나? 전통 덕후? 유네스코 덕후?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빠져나간 뒤에야 중요한 물음이었다. 체포되면 그동안 고생해온 나날
들은 물론, 목적 달성은 영영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뱀파이어도 아니고, 안개가 되어 날아 흩어지는 기술도 없는 단순한 연쇄살인마 X는 잠시 고
민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건물을 나서 가장 가까운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용의자다!”
“잡아!”


생포를 바라는지 양복쟁이들은 총을 쏘지 않고 뒤쫓아 왔다. X는 그나마 행운이 자신의 편이
라 느끼며 구로동의 어두운 미궁을 뛰고 또 뛰었다. 곧 그 또는 그녀가 찾던 갈림길이 나타났
다. 두 갈래 골목 앞에 “<-조심! 식인 자카스 펭귄 출몰 지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서 있었
다.
X는 히죽거리며 품속에서 사인펜을 꺼내 화살표를 반대방향으로 고친 뒤 오른쪽으로 도망쳤
다. 잠시 후 불쌍한 양복쟁이들이 갈림길에 도착했다. 잔뜩 흥분한 그들은 어둑어둑한 시야
속에서 표지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왼쪽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



구로동 명물 식인 자카스 펭귄들이 영양가 풍부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 보증한 맛 좋은
저녁 식사를 시작할 무렵, 520킬로미터쯤 떨어진 일본 사가현 카라스시 진제이마치 나고야
지역의 방파제 위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일어섰다. 어둠 속의 그림자는 계단으로 연
결된 둑길을 올라서면서 빛 속에 본인의 희한한 몰골을 확실히 드러냈다. 이 사람은 남성에
동양인이었다. 그는 베이지 색 코트 안에 양복과 넥타이를 갖춰 입은 일반적인 현대 사회의
직장인 차림이었으나 머리 위에는 미역과 플라스틱 쓰레기, 폐그물, 가슴에는 수초가 엉켜
있어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만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남자는 왼쪽에 대한 해협과 오렌지 빛 등으로 요소요소가 빛나는 다리, 오른쪽엔 창문 밖으로
빛이 새어나오는 민가를 끼고 몇 걸음 걷다가 근처에 있던 볼록 거울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멍
한 얼굴로 자신이 몇 발짝 떼면서 2차선 아스팔트 도로에 물과 수초를 떨구며 남긴 발자국을
쫓아 고개를 움직이다가 곧 거울을 올려다보았다.
X에게 유인당해 가슴에 총탄을 맞은 김강 수사반장이었다.
거울과의 대면을 기점으로 마치 사람 모양을 한 인형처럼 움직이던 그의 얼굴에 천천히 인간
적인 표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그의 안에 숨겨져 있던 고대의 비밀과
진실을 맞닥뜨리는 중이었다. 이 비밀들은 일종의 기만인 겉면, 마치 아이셔 사탕의 코팅을
깨물어야만 그 안에 진정으로 신 맛이 혀를 유린하듯 보통의 충격으로는 절대로 드러나지 않
고 그저 그가 평범한 현대 사회의 직장인이란 가면을 쓰도록 고안되어 마주치지 않았어야 하
는 기억들이었다.
김강으로서의 자아와 비밀이 담긴 자아가 반씩 섞이는 가운데 얼굴에 또렷이 감정이 생겨났
다. 그러면서 진제이마치 나고야 어업 협동조합 건물 앞을 서성이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인
류사의 많은 비밀과 음모, 숨겨진 수수께끼 등이 샘솟았다.
에이리어 51 기지의 비밀, 코카콜라의 성분 분석표, 추파카브라의 정체, 무한동력엔진, 피라
미드 사업 절대 성공법, 히틀러의 비밀 달기지 위치, 지미 호퍼가 묻힌 곳, 맛있는 돈가스 요
리법, 프리메이슨 충북 두북리 지부 가입자 명단, 베스트셀러 쓰는 법, 밀레니엄 버그를 막은
정의의 세력, 아틀란티스 대륙에 있던 맛집 100선 등등.
김강은, 아니 이제는 정체모를 그 누군가는 비통한 표정을 짓고는 기억나는 것마다 하나같이
많은 이들이 알고 싶어서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을 법한 특급 정보들이 든 머리를 부여잡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배고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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