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출처:
https://www.skysports.com/football/story-telling/11833/11984133/ronaldo-at-barcelona-the-story-of-his-extraordinary-1996-97-season
번역 출처:
https://www.fmkorea.com/2897921305 에펨코리아 초록녹차
호나우두는 1996년 여름, 아직 10대일 때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고 1997년 5월까지 팀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동안 이 센세이셔널한 브라질 선수는 47골을 넣었고 이전에 그 어떤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그는 2년간 FIFA 월드베스트에 선정되었습니다.
그 시절 호나우두의 팀메이트였던 후안 안토니오 피찌(Juan Antonio PIzzi)의 도움을 받아 아담 베이트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모아보았습니다.
모두가 콤포스텔라(Compostela)를 상대로 기록한 골을 기억합니다.
그 날은 1996년 10월 12일이었고, 경기장은 산 라자로(San Lazaro)였습니다. 관중은 12,000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전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호나우두가 발에 공을 달고 뛰고 있다는 것이었고, 어느 수비수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프라인에서부터 셔츠를 잡아당겼습니다. 호나우두의 다리를 노리며 넘어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너무나 강력하고, 빠르고, 기술적이었습니다. 두명은 속도와 힘에서 밀렸고, 나머지 둘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호나우두의 번개같은 동작에 제껴졌습니다.
그 이후의 마무리는 정말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감독이었던 바비 롭슨경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롭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어느 누구도 그런 골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호나우두 같은 플레이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콤포스텔라 전의 그 골은" 피찌가 말했습니다. "그건 그냥 수준이 달랐어요. 하지만 그거 말고도 그는 멋진 골을 많이 넣었죠. 저는 많은 훌륭한 선수들과 락커룸을 같이 써왔지만, 단언컨대 호나우두가 그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는 그 시즌에 세계 최고의 선수였어요."
호나우두가 PSV에서 바르셀로나로 13m 파운드에 왔을 때,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8시즌은 더 활약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대리인이 코파 델 레이를 우승하기도 전에 그를 이탈리아로 데려가는 바람에 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시절은 영광스런 한 시즌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심지어 리그 우승도 하지 못했지만 파리 생제르맹과의 컵 위너스 컵 결승전에서 호나우두는 1-0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에게 유로피언 트로피를 안겨주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20살에 불과했습니다.
굳이 호날두, 메시와 비교하자면, 그 둘은 21살 생일 전에 50골은 커녕 20골도 겨우 기록했습니다. 이게 사람들이 호나우두를 "경이로운 자(El Fenomeno)"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의 활약은 정말 엄청났고 그야말로 '낭중지추'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열광시켰고 팬들도 그에게 화답했습니다. 드라마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의 커리어 중 한 시즌에 불과했으니까요.
그 시즌을 보았던 팬들은 그의 활약을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피찌는 그 해 호나우두의 서브라는 만족스럽지 않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바르셀로나가 사온 또다른 스트라이커였고, 전 시즌 테네리페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선수였습니다. 그도 높은 야망이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습니다.
"그 해는 팀 차원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입니다." 그는 설명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루이스 엔리케, 로랑 블랑, 페르난도 쿠투, 빅토르 바이아도 영입했습니다. 바르샤는 최고의 스쿼드를 갖고 있었고 로테이션 정책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차분하고 능력있는 감독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바비 롭슨경은 그 역할을 아주 잘 해냈어요."
"저와 바비와의 관계는 아주 좋았어요. 그는 아주 환상적인 사람이었고 제가 원하는 시간만큼 뛰지 못할 때도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태도와 노력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제가 출전할 때가 되면 저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 역할은 훈련을 열심히 하고 준비를 열심히 해서 제게 기회가 왔을 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 뿐이었어요."
그는 컵 결승전에서 늦은 동점골을 기록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한 4강전에서 인상적인 복귀전을 치뤘던 바르샤 시절을 좋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호나우두의 홈 데뷔전으로 기억되고 있는 에스파뇰 전에서도 늦은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찌가 그런 활약을 보이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단 몇달만에 호나우두는 스페인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는 순수한 힘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사라고사를 상대로 5-3으로 이긴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였고, 로그로뇨를 상대로한 8-0 경기에서도 2골을 추가했습니다.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도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로 기억되는 골이 있습니다.
호나우두는 1대1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호나우두 이전에도 수많은 피니셔들이 있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준 선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키퍼를 향해 달려갈 때 그는 침착한 걸 넘어서 거의 웃고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매일 축구를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호나우두는 리포터에게 말했습니다.
테네리페의 수비수였던 세사르 고메즈는 호나우두를 전담마크한 다음에 거의 5경기를 뛴 것처럼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티비쇼에서는 '이 주의 선수상'을 '이 주의 2번째로 잘한 선수상'으로 바꾸자는 농담도 나왔죠. 어차피 최고의 선수는 너무나 명확했으니까요.
롭슨은 사람들 앞에 펼쳐졌던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호나우두는 페널티 박스 안의 좁은 공간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 페인팅과 턴만으로 수비수들을 재낄 수 있고, 그 다음 그가 패스를 해야하는지 슛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그는 공이랑 40야드를 떨어뜨려 놓아도 공을 잡고 달려서 모든 수비수들을 부술 수 있는 선수에요."
콤포스텔라를 상대로 한 그 골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 믿을 수 없는 골로 차이를 만들어냈어요." 피찌는 말했습니다. "근데 저는 그 경기를 치르기 이전 주에 그가 신체적으로 불편함이 있었다는 걸 알고있었죠."
호나우두는 계속 플레이하였고, 계속 골을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에서 즐거웠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롭슨이 카탈루냐 서커스라고 불렀던 것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문맥상 호나우두를 비판하는 언론들의 행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11월에 브라질의 국가대표 경기로 인해 처음으로 결장하게 되었습니다. 바비 롭슨은 스토이치코프, 루이스 피구, 펩 과르디올라를 포함한 많은 재능있는 선수들로 스쿼드를 꾸렸지만, 그 시즌 첫 무득점을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언론은 그것을 "호나우두 의존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호나우두는 브라질의 체력코치부터 건강문제를 진단받았습니다. 그때 롭슨의 코치, 조세 무리뉴에 의한 가벼운 논란도 있었습니다. 조세 무리뉴는 언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상적인 골을 넣고 나머지 89분을 잠자는 선수는 좋지 못합니다."
무리뉴는 그해 몇번 더 성가시는 인터뷰를 했지만 피찌는 무리뉴 신봉자였습니다.
"조세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는 선수들의 능력을 경기장에서 펼치게 할 줄 알았어요. 물론 당시 그는 그런 역할을 맡지 않았지만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고 그의 능력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오늘날 여러 코치, 감독들의 롤모델이 되었죠."
무리뉴의 비판세례를 통한 동기부여 스킬은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능력이 차고 넘치는 호나우두의 에이전트였습니다.
호나우두는 10월 초부터 이탈리아로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1월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설이 흘러나왔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레알 마드리도로 떠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왜 제가 바르셀로나를 떠나겠습니까? 전 방금 바르셀로나에 왔는데요" 호나우두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말았죠)
1992년 레이날도 피타(Reinaldo Pitta)와 알렉산드레 마틴(Alexandre Martins)은 호나우두가 아직 유망주였을 때 그를 영입한 사람들입니다. 피타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그는 바르셀로나 출생이 아니에요. 브라질 출생이지. PSV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오는 것은 비즈니스적인 결정이에요. 그냥 돈을 벌러 간거죠. 그가 다른곳에서 더 좋은 오퍼를 받는다면, 그는 떠날거에요.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일 뿐이죠."
사람들은 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시절을 환상적인 시즌으로만 알고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베르나베우에서 레알에게 2-0으로 패한 경기에서 호나우두는 3개의 찬스를 놓쳤습니다. 호나우두가 골을 놓칠 때면, 사람들은 롭슨의 전술을 비난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직전 셀타 비고와의 경기에서, 경기를 이기고 있었음에도 호나우두는 사람들의 야유를 받았습니다. "그가 9, 10월 당시의 폼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으로 보였습니다." 그 당시 롭슨이 말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야유를 보낸 팬들을 절대 잊지 않을거에요." 호나우두가 말했습니다. "난 슈퍼맨이 아니에요."
8시간동안의 골 가뭄은 모든 것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가 마침내 골을 기록했을 때에도 팀은 홈에서 3-2로 지고말았습니다. 경기장 외적으로도, 스토이치코프가 호나우두에게 장난으로 훈련시간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호나우두가 훈련을 빠진 사건도 있었습니다.
2월에 호나우두는 리스본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캄프 누로 돌아와 트로피와 함께 퍼레이드를 하였고, 바예카노를 상대로 한 경기는 6-0으로 이겼습니다. 그럼에도 관중들은 그에게 야유했습니다.
"전 정말 여기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호나우두가 레알로 향했을 때 호나우두에게 바르셀로나는 용서할 수 없는 장소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패배했고 호나우두는 그 직후 리우 카니발에 참가하겠다는 엄청난 결정을 내립니다. 그 날 호나우두가 밤새 노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그 사진들은 바르셀로나의 모든 관계자들에게 모욕적이다." 스포르트가 보도했습니다.
"지금 클럽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해있는데 팀의 최고 스타라는 녀석은 카니발에 간다고 휴가를 받았다. 클럽의 규율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당시에 언론들은 테네리페와의 4-0 패배와 같은 부정적 측면들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를 뚫고 호나우두가 다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호나우두는 베티스를 상대로 아름다운 골을 넣었습니다. 사라고사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또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몸을 혹사하였지만 계속 나아갔습니다. 바르셀로나는 늦은 3월부터 17일 동안 6경기가 있었는데 호나우두는 그 중 5경기에서 골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6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 이유는 그가 칠레와의 경기를 위해 국가대표에 콜업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경기에서도 2골을 기록했습니다.
기억할 만한 순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코파 델 레이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2경기 모두 지면서, 바르셀로나는 코파 델 레이 4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만나게 됩니다. 1차전에서 비긴 뒤 바르셀로나는 2차전 전반에만 3골을 실점하게 됩니다.
"그 경기는 저는 물론이고 그 경기장에서 뛰었던 운 좋은 선수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피찌가 말했습니다. "그날 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경기를 뒤집기 어려울거라 생각하며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모든 관중들이 우리를 연호하고 있던 장면입니다."
"그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우리가 잔디를 밟았을 때 팬들로부터 놀랄만한 에너지가 뿜어져나오고 있었어요. 그것은 마치 스팀팩같았고 우리가 역전을 만들어내는 데 훌륭한 기폭제가 되었죠."
호나우두는 그날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피찌가 5-4 승리를 결정짓는 골을 넣게 됩니다.
컵 대회는 롭슨에게 구원이었습니다.
국내 컵 대회에서의 성공뿐 아니라, 바르셀로나는 준결승에도 피오렌티나를 잡으며 결승에서 파리 생제르맹을 만나게 됩니다. 그무렵 엘클라시코에서 호나우두가 2번만에 패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승리를 따냈던 걸 보면 그 당시 우주의 기운이 바르셀로나를 향해있던 것 같습니다.
호나우두는 4일 뒤 로테르담에서 열린 유로피언 결승전에서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당시 루이스 반 할 감독으로의 교체설이 나오던 롭슨에게 그것은 구원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은 바르셀로나 시절 호나우두에게 영광스러운 영예였습니다.
그는 다음 경기에서 셀타를 상대로 또 골을 기록했고, 그 다음 마지막 홈 경기가 될지 몰랐던 데포르티보와의 경기에도 출전했습니다. 이후 3번의 홈 경기가 남아있었으나 코파 아메리카로의 차출은 그가 그 경기들을 모두 놓치게 된다는 걸 의미하였습니다. 또한 베티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이 6월 말로 미뤄지면서 그 경기 또한 놓치게 되었습니다.
89분 동안, 그것은 특별할 것 없는 고별전으로 보였습니다. 심지어 관중들의 휘파람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 땅에 쓰러졌던 호나우두가 먼지를 털고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상대방의 수비를 뚫었습니다. 그것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기록한 마지막 골이었습니다.
"단 몇초만에 망부석에서 득점자가 되었습니다." 스카이스포츠의 롭 팔머가 코멘트했습니다. 그것은 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시절을 아주 완벽하게 요약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잠시동안, 모든 것이 다시 괜찮아졌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지면서 3경기를 남긴 채 승점차는 2점이 되었고, 호나우두의 재계약도 성사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구단 수뇌부들과 호나우두의 에이전트는 6시간의 미팅을 가졌고 상향된 조건을 포함한 계약연장에 대해 철저히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호나우두는 새로운 클럽으로 이적합니다. 그곳은 이탈리아입니다." 호나우두의 에이전트 지오반니 브라치니(Giovanni Brachini)가 말했습니다.
인터밀란이 바이아웃을 지르며 호나우두를 유혹했습니다. "걔네끼리 이미 합의를 본 것 같아요." 바르셀로나의 단장 조셉 루이스 누네즈(Josep Lluis Nunez)가 불평했습니다.
"걔네한테는 돈이 신이죠." 롭슨이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그건 호나우두에게도 아주 좋은 계약이겠죠. 하지만, 그는 바르셀로나보다 더 좋은 클럽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호나우두의 결장 속에, 바르셀로나가 에르쿨레스에게 패하면서 타이틀 경쟁은 갑자기 끝이 났습니다. "그날 우리에게는 야수가 없었습니다." 과르디올라가 말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남은 리그 2경기를 이겼지만, 카펠로의 레알마드리드에 2점 모자랐습니다.
그래도 바르셀로나는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연장전 접전 끝에 3-2로 베티스를 무찔렀습니다. 피찌는 정규시간에 동점골을 기록하였습니다.
"시즌을 쓴맛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 승리를 따내야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축하 파티는 밤새 지속되었습니다. 어쨌든 롭슨에게 그것은 완벽한 피날레였습니다. 그 해 여름 반 할이 그를 대신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왔고, 롭슨은 바르셀로나에서 다른 직책을 맡으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이같은 사랑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4개의 대회에서 47골을 기록하고,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 100,000마일을 날아다니고, 10개의 국가를 방문하였지만, 그는 자신이 버린 팬들로부터 야유의 노래를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레알 마드리드로 갔다는 것은 그가 카탈루냐의 히어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입니다. 그러나 1996/97 시즌을 기억할 수 있는 팬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특별한 선수를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상 전의 호나우두를 봤어야 해요.
이제 피찌는 감독입니다.
"제가 지금 사용하는 많은 컨셉들이 바르셀로나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볼 돌리기, 점유, 강도, 공격적인 상황에서의 압박, 상대방을 끌어오기 위한 패스들이 있죠. 물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저는 아직도 이런 것들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아직도 축구계의 한 '현상'이었던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오 데 리마'의 전성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것을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가 리그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다른 컵들을 들어올릴 수 있었고,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내고 혼자 힘으로 상대방과 우리의 불균형을 야기했던 선수가 바로 호나우두였습니다."
"그는 힘과 에너지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게 호나우두 커리어에서 최고의 모습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그 때 그와 함께 뛰었던 모든 선수들에게 그 순간은 영광이자 특권이었어요."
결과적으로 호나우두가 인테르로 떠났던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선택이었네요.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 세리에 A에서 본인의 역량이 진짜 중의 진짜임을 증명했으니... 물론 그리고나서 무릎이 망가져버린게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어린 시절 메시도 참 센세이셔널한 선수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호나우두의 그 시절 포스를 보여준 선수는 아직 없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