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출처:
https://theathletic.com/2129209/2020/10/14/cristiano-ronaldo-manchester-united-real-madrid/
번역 출처:
https://www.fmkorea.com/3145758900 에펨코리아 열한시십일분
The real story of football’s biggest transfers – Ronaldo joins Manchester United
Daniel Taylor and Jack Lang Oct 13, 2020
축구계에서 가장 큰 이적을 다룬 실화 - 호날두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예전 포르투의 홈 구장인 이스타디우 다스 안타스에서, 리버풀 대표단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고, 클로즈업하는데서 오는 일종의 흥분이 있었다.
그 날은 리그 시즌의 마지막 주말이었고 유럽에서 가장 큰 클럽들 중 몇몇을 대표하는 국제 축구 스카우트들의 소규모 부대가 스포르팅 리스본의 공격진의 두 재능 있는 십대들을 보기 위해 포르투갈로 향했다.
한 쪽인, 히카르두 콰레스마는 흐릿한 스피드와 기술로 그 여름 후반에 바르셀로나로 가게 된다.
하지만 리버풀의 생각에 더 두드러진 것은 그의 반대편 윙어였다. 그의 셔츠는 그에게 너무 커 보였다. 그는 치아 교정기를 하고, 이마에는 여드름이 있었고 발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고, 18살이었다. 포르투의 감독인 조세 무리뉴는 그가 마르코 반 바스텐의 아들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날 저녁, 리버풀 수석 코치인 필 톰슨은 축구 에이전트 토니 헨리와 함께 포르투로 저녁을 먹으러 가서 스포르팅이 그를 얼마에 팔도록 설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헨리는 웨인 루니의 에이전트인 폴 스트레트포드를 위해 일했고, 호날두가 뛸 프리미어 리그 클럽을 찾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호날두는 비록 포르투가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지만, 리버풀이 그를 원하기에 충분한 스타적 잠재력을 보여줬다.
필 톰슨 "전 여전히 토니의 말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모두 아주 멋지고 여유로웠어요. 400만 파운드를 그의 계약 기간인 4년 동안 지급하면 되니, 1년에 100만 파운드였죠. 매우 합리적인 것 같았어요. 그리고 나서 저는 연봉에 대해 물었고 토니는 1년의 100만 파운드라고 말했죠."
"18살 선수에게 그건 엄청난 돈이었어요. 하지만 토니는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고, 저는 '지자스, 이 사람들이 정말 그를 이적하게 할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열망했고, 그 소년은 분명 대단한 재능이었습니다."
제라르 울리에는 호날두를 직접 보고 싶어했다. 리버풀 감독은 호날두를 보기 위해 포르투갈 U20 대표가 뛰는 툴롱 토너먼트에 갔다. 리버풀은 임금 타협에 도달할 수 있는 한 합의의 근거가 마련되어 있었다.
필 톰슨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화요일 오전 훈련장에서 점심을 먹던 중 스카이 스포츠의 노란 자막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220만 파운드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계약했다'고 전했습니다. 제라르와 저는 먹던 음식에 질식할 뻔 했죠. 제라르가 벌떡 일어나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긴거야?'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리스본에서의 달콤한 향기로운 밤이 맨유를 위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는 것은 때때로 쉬울 것이다.
결국, 그 이야기의 인기있는 버전은 이렇다 :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친선 경기, 호날두의 눈부신 활약, 그리고 지금은 친숙한 이야기인 퍼거슨의 선수들이 그들을 어지럽히고, 패배시킨 소년을 영입해 달라고 그들의 매니저에게 간청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거래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 특히 호날두와 그의 에이전트인 조르제 멘데스는 모든 것이 프리 시즌에 고정되어 있다는 인식에 즐거워하고 있다.
호날두 "저는 맨체스터가 제 미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쓰여진 모든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한 맨유의 관심은 그 친선 경기 후에만 생긴 것이 아니에요. 좋은 활약인 것을 알고 있지만, 단지 그 활약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관련자 중 몇 명인 전 맨유 사장 피터 캐년, 당시 스포르팅 매니저인 라슬로 볼로니, 디렉터 카를로스 프레이타스, 아스날, 리버풀 등 많은 관계자들과 함께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야기를 나눴다.
호날두의 맨유로의 이적에 대한 특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이 이적은 스트레트포드와 멘데스가 연루된 5년 간의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고, 루니와 호날두의 에이전트 사이에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관계 균열을 남겼다.
- 맨유는 다소 늦게 호날두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리버풀과 아스날이 매주 호날두를 관찰하는 동안 포르투갈에서는 거의 그들을 볼 수 없었다.
- 아르센 벵거는 맨유에게 호날두를 빼앗긴 것에 대해 격분했고 멘데스의 선수는 결코 영입하지 않았다.
- 리옹은 2002년 호날두의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모든 팀을 제치고 그를 영입할 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리옹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그리고 사실상 모든 유럽의 거대 구단들뿐만 아니라 토트넘도 호날두에 대한 제보를 받은 후 그들만의 '만약에?'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맨유가 다른 모두에게서 이 영입을 가로챘을까?
음, 우선, 그들 쪽에는 행운의 요소가 있었다. 10대의 호날두의 경우, 아슬아슬한 이야기들, 넋두리들과 여러가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아스날은, 호날두가 맨유로 이적하기 거의 9개월 전인 2002년 11월 24일,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호날두가 런던으로 와서 예비 메디컬까지 했다는 것에, 이번 이적에 분개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맨유가 그들이 궁극적으로는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교한 전략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2002년 여름, 맨유는 스포르팅과 비공식적인 결연을 맺었는데, 이는 자동적으로 퍼거슨이 모든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포르투갈 축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퍼거슨의 수석 코치인 카를로스 케이로스의 아이디어였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구단들이 스카우팅, 훈련, 선수 육성 등에 대한 조언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것이 퍼거슨이 스포르팅의 가장 훌륭한 어린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생긴다면, 맨유는 강력한 위치에 서게 된다. 적어도, 스포르팅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가 그 좋아하는 대열에 합류했을 때는 손쉬운 일이었다.
피터 캐년 "우리는 스포르팅과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포르팅은, 포르투갈 축구계가 그랬던 것처럼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카를로스를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선수들에 대한 좋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가르키고 있었죠. 서로을 알아가고 함께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구체적으로 크리스티아누 때문은 아닙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맨유가 스포르팅의 새 경기장인 이스타디우 조제 알발라드에서 열리는 첫 경기에 초대받도록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비밀은 정말 훌륭하게 밝혀졌다.
캐년 "우리가 앞서서 그를 발견한 유일한 클럽이었지만, 그는 이미 유럽의 떠오르는 재능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강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2003년 8월 6일, 경기 전날 저녁 퍼거슨은 카스카이스의 퀸타 다 마리냐 골프 리조트에서 스포르팅 디렉터인 조세 베텐코트와 미구엘 리베이로 텔레스와 함께 식사를 했다. 멘데스는 식사 중간에 도착했다. 멘데스의 조카이자 오른팔인 루이스 코레이아도 거기 있었다. 그들은 골프장이 보이는 테이블에 둘러앉았고, 와인이 나오자 대화 주제는 호날두로 흘러갔다.
멘데스는 당시 지금처럼 슈퍼 에이전트가 아닌 평범한 에이전트였지만, 이전 나이트클럽 오너인 그는 이미 만만치 않은 수완가였다.
호나우지뉴는 바르셀로나와 계약하기 위해 맨유를 거절했다. 데이비드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후안 베론은 첼시로 향했다. 멘데스는 이미 스포르팅의 디렉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설명한 상태였다. 그는 맨유가 호날두를 원하고 그에게 쓸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고객을 위한 그들의 계획을 알고 싶어했다.
저녁 식사 후, 퍼거슨과 멘데스는 매니저 룸에서 2시간 동안 회의를 했고 신사 협정을 맺었다. 이 제안은 호날두가 1년 동안 임대로 스포르팅에 머문다는 조항을 포함한 5년 계약서였다. 퍼거슨은 언제나 그랬듯이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멘데스의 눈을 바라보며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했다. "우리가 그를 돌볼 겁니다."
다음 날 저녁은 전설로 남았고, 이는 아마도 맨유의 수비를 위협하는 호날두를 막으려는 존 오셔의 "빌어먹을 편두통을 남겼다"는 말로 가장 잘 요약 된 것 같다. 호날두는 이날 오전 맨유로의 이적이 합의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작이 날개를 펼치 듯이 좋은 저녁을 보내기로 선택하였다.
캐년 "크리스티아노는 그날 밤 불타고 있었죠. 그게 모두를 더욱 흥분시켰습니다. 그가 어떤 선수인지 우리에게 보여줬죠. 모든 것을 더 가속화시켰습니다."
호날두가 황홀한 활약을 펼치고, 하프 타임 때, 캐년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퍼거슨이 보낸 메시지는 짧고 달콤했다. "이 소년은 우리와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 후, 경기가 끝나고, 퍼거슨은 그의 키트맨인 알버트 모건을 VIP석에 있는 맨유 최고 경영자를 찾기 위해 보냈다.
캐년 "원래 계획은 크리스티아누가 한 시즌 더 스포르팅에 남는다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이었죠. 원래는 스포르팅과 함께 발전해서 1군 축구를 정기적으로 하고 그 다음 해에 맨유로 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웃으며)그가 눈을 멀게 했죠. 그렇지 않나요? '보세요, 이곳에 엉망으로 남기지 말고, 그가 다른 곳에서 발전하는 곳을 보지 말고, 그를 클럽의 틀로 끌고 옵시다'라고 말하자 모든 것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알렉스 경이 이끄는, 우리 모두가 이 거래를 성사시키고 그를 맨체스터로 데려오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라고 결정한 순간이었죠."
드레싱 룸에서 있었던 이 이야기는 여러 번 전해져 왔으며, 이후 맨체스터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퍼거슨은 여러 선수들로부터 호날두와 계약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는 나중에 더 자세히 말하도록 하겠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멘데스가 스트레트포드와의 분쟁으로 인해 법정 소송의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는 이야기이며, 이는 호날두와 루니가 올트 트래포드에서는 팀 동료였던 반면, 그들의 에이전트끼리는 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두 에이전트의 인연은 2002년 3월, 포르투갈 선수들을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시키고 수수료를 나눠갖겠다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스트레트포드가 리스본으로 초청되어 멘데스의 회사인 게스티푸테와 동맹을 맺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스트레트포드의 자회사인, 포메인션은, 스포르팅의 우고 비아나를 뉴캐슬로, 누노 카푸쵸를 레인저스로 보내면서 거래금의 일부를 받았다. 스트레트포드가 영국에서 필요한 연락망이 있었던 반면, 멘데스는 점점 더 많은 포르투갈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둘의 조합은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호날두의 거래는 결국 완전한 관계 파탄을 초래한 몇 가지 분쟁 중 하나였다. 스트레트포드는 포르투 지방 법원에 서류를 제출했고, 벵거가 증인 명단에 올랐다. 사건이 시작되기 직전 '재판 절차에 따라' 해결됐고, 관련자들이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 서류에 사인하였다.
물론 퍼거슨은 선수들과 함께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감독은 늘 앉던 자리인, 앞줄 통로 위치에 있었고, 선수들간의 대화는 호날두의 스텝 오버와 그가 며칠 안에 맨체스터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루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한 자리는 비어 있었다.
수중에 여행 가방을 지닌 캐년은 스포르팅 회장인 안토니오 디아스 나 쿠냐를 만나기 위해 퀸타 다 마리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할 일이 있었다.
캐년 "팀은 떠났고, 저는 남았죠. 우리는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전 스포르팅 디렉터 프레이타스 "아스날이 첫 접촉 팀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데인이 우리와 접촉했죠. 하지만 인테르,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같은 다른 클럽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선수와 계약하기 위해 스포르팅과 연락을 취했죠."
"우리는 모든 클럽의 고위층으로부터 공식적인 제안을 받았습니다. 매우 좋은 제안을요. 유벤투스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유벤투스와 협상을 했지만,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합의의 일부는 마르셀로 살라스가 스포르팅으로 오는 것이었지만, 살라스는 포르투갈로 오고 싶어하지 않았죠."
칠레 국대인 살라스는, 선수+돈의 일원이 되는 것에 진지하게 고려했고, 토리노에 본부를 둔 일간지 투토스포르트는 "유베 : 호날두는 너의 것"이라는 헤드라인까지 달게 했지만, 대신 그는 남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의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할 수 없었고 2003년 7월 17일 리버 플레이트로의 임대가 확정되었다.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맨유가 호날두 영입을 위해 움직이기 3주 전에 말이다.
발렌시아의 회장 후보였던 파코 로이그는, 만약 그가 당선된다면, 그는 호날두와 콰레스마, 혹은 호날두를 단독으로 영입하기로 멘데스와 합의하였다. 발렌시아는 라파 베니테즈가 감독을 맡아, 다음 시즌 라 리가와 유에파 컵 더블을 차지한다. 하지만 스페인 클럽의 재정적인 어려움은 그들이 끝까지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파르마는 약 700만 파운드를 제안했지만 호날두가 1년 동안 스포르팅에서 임대를 하기를 원했다. 현재 맨시티의 풋볼 디렉터인 치키 베히리스타인은 바르셀로나를 위해 호날두를 보러 스포르팅과 맨유의 경기를 지켜봤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레알 마드리드도 현장에 있었다. 케이로스는 6주 전에 맨유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맡았다. 마드리드에 대한 그의 첫 지시는 호날두를 영입하기 위해 어떠한 지불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스포르팅 감독 볼로니 "개인적으로, 저는 3클럽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에 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오세르의 가이 루였죠. 저는 그에게, 예, 호날두를 정말로, 정말로 특별하다고 말했죠. 호날두는 어린 선수였고, 가이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적료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고, 저는 그에게 몇 백만은 지불해야 할 거라고 말했죠. 그는 '좋아요, 이건 저를 위한 딜이 아니네요'라고 말했고, 그걸로 대화는 끝났습니다."
볼로니는 리옹이 호날두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가질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하여 공격수 토니 베렐스의 임대 딜을 제안하였다.
볼로니 "가장 놀라운 일은 리옹과 일어난 일이었죠. 스포르팅은 당시에 돈이 없었어요. 전 회장에게 '만약 그들이 우리에게 공짜로 베렐스를 준다면, 우리가 젊은 선수들을 팔 때 그들이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리옹은 '이 어린 선수들이 누구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많은 선수들이 있지만, 최고는 호날두와 콰레스마라고 말했죠. 1주일, 2주일을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이적 시장이 닫힐 쯤에, 다시 연락을 했죠. 그들은 그 선수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그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저는 다른 공격수를 찾고 싶어서 아스날을 방문하기 위해 영국에 있었습니다. 우리 공격수가 리그 우승이 유력하던 그 때 다리가 부러졌고, 저는 대체 선수를 찾고 싶었죠. 아스날 리저브 팀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하튼, 아르센이 호날두에 대해 물었고 저는 가이 루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해줬죠."
"저는 벵거가 자신의 서류 캐비닛으로 가서 호날두에 대한 엄청난 서류들을 꺼낸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죠. 호날두를 완벽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랐죠."
스포르팅 매니저는 너무 놀라지 말았어야 했다. 아스날은 당시 예산 중 많은 부분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쓸 돈이 많지 않았다. 벵거의 유명한 인용구는 '우리는 슈퍼스타를 사지 않고, 우리는 슈퍼스타를 만든다'였다. 그리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아스날이 다른 어떤 클럽보다 호날두 영입을 더 강하게 압박했다는 것이다.
애슬래틱 "맨유는 원래 호날두를 스카우트 하지도 않았어요. 선수에 대해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매주 그곳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팀과는 다르죠."
사실이었다. 리스본 공항에서는, 스포르팅의 홈 경기가 있기 전에, 각 스카우터들이 여권 심사대를 통과했으며, 맨유에서 온 사람은 자주 없었다.
멘데스는 누가 오는지 알아내고 가끔 관련 스카우터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직접 교통편을 마련해줬다는 사실을 알려주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각각의 스카우터들이 놀랄만한 것은 그들이 다른 두 클럽의 대표단과 함께 차를 탄다는 것입니다." 이 거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말했다. "이것은 조르제만의 일이 아니었죠. 누구나 경쟁에 대해 알게 하는 것은 흔한 트릭이에요."
당시 아스날의 유럽 스카우터였던 다미앙 코몰리는 호날두가 15살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클럽의 수석 스카우터였던 스티브 라울리는 이 10대 선수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스날의 또 다른 주요 인재 중 한 명이었던 프란시스 카기아오는 스포르팅에서 정기적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었다.
리버풀 역시 마찬가지다. 톰슨은 또한 호날두가 포르투갈 U20에서 뛰는 것도 보았다. 콰레스마도 종종 같은 팀에서 뛰었다.
필 톰슨 "그들 사이에는 백만 번의 스텝오버가 있었습니다."
퍼거슨의 보조 중 한 명인 짐 라이언은, 호날두를 보러 갔고 그에 대한 호의적인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맨유는 케이로스가 현장에 있을 때에도, 스포르팅의 경기에 자주 오지 않았다. "그들은 몇 년 뒤까지 지정된 포르투갈 스카우터가 없었습니다."라고 또 다른 소식통이 말했다.
토트넘 역시 리스본을 정기적으로 방문했고, 당시 토트넘 감독이던 데이비드 플리트는, 이미 에이전트인 배리 실크먼으로부터 '훌륭하고, 훌륭한 선수'를 만나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 토트넘 선수인 로니 로젠탈도 그의 예전 클럽에 호의를 베풀려고 노력했다.
로젠탈 "저는 포르투갈에 정기적으로 있었고 그들의 예전 경기장에서 스포르팅의 경기를 많이 봤죠. 호날두를 처음 본 것은 2002년 10월이었어요. 클럽에 알리기 시작했는데, 제가 처음 연락한 클럽은 토트넘이었죠. 그게 사실입니다. 저는 그들이 매우 관심을 가져야 할 선수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렸죠."
그러나 토트넘은, 그 이상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음 달에 호날두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아스날로의 이적을 논의하기 위해서 였다.
호날두는 그의 어머니인 돌로레스, 멘데스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구내식당에서 벵거와 함께 식사를 했다. 호날두는 훈련장을 견학했고 티에리 앙리와 여러 선수들에게 소개되었다.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합의되었다. 벵거는 호날두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서, 요청대로, 28번 셔츠를 입어도 된다고 말했다. 아스날의 한 소식통은 "실제로 행해지지는 않은 채, 이적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이야기는 멘데스가 전화를 걸기 위해 사라졌고,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벵거에게 방금 퍼거슨과 통화를 했고 맨유는 1100만 파운드를 제안했다고 말했다는 것이지만, 확증된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이 U턴이 멘데스의 주도였다는 점이다. 내부 소스를 가진 한 사람은 "에이전트가 그의 능력을 이용한 전형적인 경우죠. 고전적인 멘데스였어요. 조르제와 함께라면 항상 입찰 전쟁에 휘말리곤 했는데, 조르제가 그걸 촉진시켰고 결국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죠."라고 말했다.
벵거는 결코 멘데스를 용서하지 않았고, 적어도 그는 그 일을 결코 잊지 않았다. 만약 둘이 같은 행사에 참석했다면, 벵거는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했다. 그저 대충의 인사만 있었을 뿐이다. "항상 매우 차가웠습니다." 서로를 아는 사람이 말한다. "악수, 다른 것은 없었죠."
퍼거슨은 멘데스와 가까워졌고, 그 후 몇 년 동안 나니, 안데르손, 다비드 데 헤와를 같은 연결을 통해 영입하였다. 캐년도 첼시의 최고 경영자 자리를 맡기 위해 맨유를 떠난 후, 무리뉴를 비롯한 다양한 멘데스의 고객과 거래를 하였다.
아스날은 벵거가 한때 "나의 가장 큰 후회"라고 표현하며,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그들은 멘데스에게 2014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디에고 코스타와 계약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다시 한번, 그 건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끝나지 않았다. 아스날은 멘데스의 선수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경향을 보이는 몇 안 되는 엘리트 클럽들 중 하나였다.
우연일까? "아마 아닐겁니다." 라고 벵거 측 사람이 말했다.
지금 캐년의 말을 듣는 것은 맨유가 현대 클럽들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거의 마주치지 않았던 행복한 시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캐년 "현실적으로, 이건 오만함이 아닙니다. 맨유는 크리스티아누를 위해 많은 훌륭한 것들을 제공했습니다. 그는 맨유를 위해 훌륭했고, 우리는 그를 위해 훌륭했죠."
"기억해보세요, 그는 18살에 완성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큰 팀 중 한 곳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죠."
"우리가 조르제와 이야기한 것 중 가장 큰 부분입니다. 그리고 알렉스는 크리스티아누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고, 맨유로 와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스콜스, 베컴, 긱스, 네빌 형제와 같이, 어린 선수들을 발전시킨, 좋은 역사를 가지고 있죠. 우리는 유럽 전역의 어떤 큰 클럽보다도 이를 더 잘 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다른 팀보다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강력한 레알 마드리드보다요?
캐년 "그는 맨유에서 뛰었던 만큼 일찍 레알에서는 뛰지 못했을 겁니다."
이 이야기의 가장 인기 있는 버전은 맨유가 그 경기가 있기 전까지 호날두를 몰랐고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전날 밤 이적이 합의된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맨유 선수들이 그가 슈퍼 스타가 될 재목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퍼디난드 "스콜스, 버트 그리고 저는 모두 '우리가 얘를 영입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억해보세요, 우리는 호나우지뉴를 놓쳤고, 최고의 선수가 필요했습니다. 존 오셔는 산소가 필요한 듯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벤치 멤버였던 대니 퓨 "약 15분 후에, 벤치에 모든 사람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죠. 모두가 그에 대해 발광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감독님에게 '이 선수와 계약해야 합니다'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것은 감독님과 캐년이 거래를 가속화하기 위해 남아서 경기 후 코치가 지연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퍼디난드 "감독과 캐년이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다는 말을 코치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늦어지는 점에 대해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어요."
캐년 "또 다른 통찰력은 알렉스가 그를 유혹하는 데 한 역할입니다. 알렉스는 평소에 하지 않던 것 중 하나가 약속된 경기 출장이었죠. 그의 만트라는 맨유를 위해 축구를 하는 영광을 얻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했죠. '너는 경기 시간을 얻을 것이고, 1군에서 경기를 할 거야. 얼마나 많은 시간이 될지는 너에게 달렸기 때문에 그건 말하지 않겠다만, 너를 방관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건 네가 맨유에 와서 팀에 합류하는 것에 관한거야' 그게 핵심 요소였죠."
그 이적료는 호날두를 영국 축구에서 가장 비싼 10대 선수로 만들었다. 이틀 뒤 그를 맨체스터로 데려갈 전용기가 마련됐고 연봉은 150만 파운드 이상이었다. 포르투갈 최고 리그에서 오직 1시즌을 뛰고, 25경기 동안 3골을 넣은 선수에게는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프레이타스 "우리는 그의 앞날에 빛나는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판 것에 결코 완전히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취약한 입장에 있었죠. 선수는 떠나서 그의 경력의 다음 장을 시작하고 싶어했어요. 당시 계약의 마지막 해에 들어간 선수에게는 비싼 이적료였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런 잠재력을 가진 선수를 파는 것은 결코 기쁘지 않죠."
하지만 스포르팅은 몇몇 맨유의 라이벌보다는 훨씬 행복했다. 우선 리버풀이다.
필 톰슨 "사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실수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측할 수는 없지만, 이적료는 24~48시간 만에 820만 파운드가 올랐습니다. 우리에게는 400만 파운드면 그를 영입할 수 있다고 했죠."
"전 토니 헨리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토니의 첫 마디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아요'였죠.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전화를 받았는데 '당신은 거래에서 손을 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죠. 바로 그거에요. 본인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호날두 협상에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은 리버풀이 그것으로 체면을 차리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톰슨이 인용한 이적료는 다른 구단들에 비해 확실히 낮았다. "그정도까지 가면, 그의 서명을 받는 것은 리버풀의 몫이죠. 리버풀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충분히 빨리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죠." 한 내부자가 말했다.
아마도 해리 키웰이 리즈에서 막 영입되었다는 사실로 더 복잡했을 것이다. 리버풀은 또한 호날두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임금으로 르 탈렉과 시나마-퐁골이라는 두 10대 선수와 계약하였다. 톰슨은 만약 리버풀 선수들이 18살 소년에게 클럽이 그 돈을 지불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아스날의 소식통이 마지 못해 인정했듯이 맨유가 6년 후 호날두를 세계적인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팔기 전에 '그들이 투자한 가치를 얻었다'라는 점이다. 그 때 맨유는 바이백 조항으로 첫 소유권이 있는 스포르팅에게 그를 영입할 것인지를 물어봐야 했다.
놀랄 것도 없이, 스포르팅에게는 8000만 파운드의 여윳돈이 없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가져와봤습니다. 확실히 경기를 같이 뛰어본 선수들이 바로 느껴지는 것도 있었던 것 같네요.
아스날과의 이야기는 뭐 유명하고...
마지막에 스포르팅의 바이백 이야기는 깨알같은 웃음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