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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7/22 18:21:07
Name nickyo
Subject [일반] 질럿을 닮았던 그녀#1
유난히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재수생이었던 나는 모의고사에 비해 처참한,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에게 작년보다 성적은 올랐다고 커버를 칠 만한 학교에 입학하였다. 봄이라고 부르기에 약간은 민망한 날씨가 지속되었던 나날들. 그 사이에는 바로 OT라는 술파티도 함께 있었다.

사실 변명하자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드론이 일꾼 오버로드는 공격유닛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내가 동네 피시방에서 적수가 없을 만큼 스타크래프트 실력을 키우면서, 숫자와 a,x,b,f,c 등이 잔뜩 나오는 과목에서 낙제를 맞아 지금의 학교에 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는 아 요런 학교는 나님의 수준과는 맞지 않아 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심지어 재수나 삼수한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어쩐지 첫 오티에서 속으로 '짜아식들'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뭔가, 우쭐할 일거리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OT라는게 간단하게 윗 학번 소개받고, 온 사람들 명찰확인하고, 적당히 학과소개후 술집을 빌려서 술마시는, 그런 뻔한 일이었다. 아-집에가고 싶다. 스타크래프트 하고싶다. 친구랑 술먹고싶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여자사람이 있다 오오 신기하네 하면서 두리번 두리번. 다들 서로 두리번거리며 머쓱한 인사를 나누며 술집에서 술을 한잔씩 나누었다. 산만한 학생회장형의 우렁찬 건배가 우스꽝스러웠지만, 어쩐지 싫지는 않았다.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이슬을 입에 탁 털어넣고 요정과도 같은 기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조금은 상크미한 기분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다들 서로 아직은 어색한 눈치. 그러나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 키컸으면 키컸으면 키컸으며~언 머리 어깨무릎 발 까지 16...아 이게 아니지, 다시- 쭉쭉쭉쭉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좌로삼삼 짝짝짝 우로삼삼 짝짝짝 워어어언 샷 하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지고, 바니바니바니바니 베스킨~라빈~스 3~1 , 딴따따따따다~, 눈치게임 1! 2! 등등의 조악스럽지만 너무나 흥미진진했던 술게임이 진행되며, 우리는 붉어진 얼굴만큼 서로가 금세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리를 서너번 바꾸었을 때 쯔음, 내 맞은편에는 얼굴이 새빨개진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성비 여 6 남 4인 이 학과에서 여자는 흔한동물이었지만, 남중 남고 테크트리에 학원이라곤 태권도장이나 찾아다녔던 나에게 여자사람은 미지의 동물이자 빅뱅이론과 물리학만큼이나 난해하면서도 스타크래프트 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일단 입가에 침부터 바르고 흐릿한 눈을 껌뻑-껌뻑 하며 상대의 얼굴을 집중해서 알아보려 애썼다. 원래 술이 좀 들어가면 사람 얼굴도 흐릿해지다보니. 그런데, 거기엔 내가 너무나 낯이 익은 얼굴이 있었다.

"안녕^^?"

"어.........응 안녕?"

이럴수가, 아이어에 충성을 바쳐야 하는 질럿이 왜 여기에? 나는 다시 눈을 끔뻑끔뻑 거렸다. 우왘 부왘 EE!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고 우웩 끅 꺄하하하 하는 소리도 서라운드로 깔리는 사이에서, 마이 라이프 포 아이어! 를 외칠듯한 느낌의 여자. 나는 그녀의 인사를 받는 그 짧은 사이에도 수많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려보고 있었다. 설마 이건 그... 그건가. 지상최후의 넥서스의 주인공처럼 나도 테란행성 어딘가에 떨어진건가....그렇다면 소신대로 나의 아이덴티티는 저그당! 이렇게 외쳐주겠어! 하는 엉뚱한 상상과 함께 술이 취해서 그런지 왠지 술집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마린의 사복변장이 아닐까 싶기도 한 아리송한 느낌이 어쩐지 묘했는데, 표현하자면 '돋았다'고나 할까. 그런 바보같은 생각사이에서 그녀는 내게 술 한잔을 건내며 이름을 물었고, 나는 그 술잔을 털어넣고서야 질럿을 닮은 그녀가 아이어 행성사람이 아닌것도 알았다.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져셔, 나는 그 후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녀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대학 합격했을때 기분이 어땠냐, 수능은 참 힘들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멋있는거 같다, 요새 일본의 아라시랑 한국의 동방신기중 누굴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맥주 맛있다, 소주 쓰다, 잘생긴애들이 있다 없다, 이쁜애들이 있다 없다 같은. 물론 내가 아무리 취했어도 가녀린 여성앞에서 질럿과 하이템플러와 저글링히드라의 역학관계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군대얘기랑 축구얘기랑 싸움자랑얘기보다도 더 안좋을거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친해진 질럿녀와 나는 아쉽게도 교외 OT라는 콘도에서 주류판매량을 늘리는 주류회사를 위한 공익캠페인 행사에서 멀리 떨어진 조가 배정되었고, 그 후에도 수강신청이 엇나가며 교내 OT에서의 친근감은 점점 희석되어 가고있었다. 새로운 아이들은 너무 많았고, 이쁜 아이들도, 귀여운 아이들도 너무 많았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과실에 들르거나 학교 정문을 지나거나, 혹은 아주 아주 가끔, 그러니까 마치 바닥에서 500원짜리라도 주운 날과 흡사할 정도로 몇 없는 날중 도서관을 갔을 때에도 질럿을 닮은 그녀를 찾았다. 대학에 처음 와서 재미나게 이야기 한 여자사람의 흔적을 찾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언젠가 그녀가 몇학번 위의 멋진 선배와 사귀고 있다는 소식도 듣고, 그녀가 꽤 인기가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벌써 차였다며 울고불고 했다는 뒷 이야기까지. 그때서야, 그때의 그녀가 질럿을 닮은 미녀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아쉬운 꼬리가 남았지만, 그렇게 그냥 기억 밖으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어느새 여자사람은 더 이상 무서운 테란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적어도, 사이언스 배슬과 SK테란보다, 여자사람이 덜 무섭다는건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진 반년이 지나, 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들때, 나는 한 연극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선배와 헤어진 질럿을 닮은 그녀가 있었다. 어쩐지, 몇개월 새에 너무나 멋스러워져서 도리어 손을 내밀기가 멋쩍었다. 그러나 그녀는 역시 처음 만날 그날과 같이, 활짝 웃으며 마이 라이프 포 아이..가아니라 안녕^^! 하고 웃어주었다. 오랜만이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멋쩍게 웃음지었다. 여전히, 질럿같은 그녀는 다른 여자사람보다 훨씬 편안했다.  역시, 저그가 아이덴티티인 사람에게 토스는 친근할 수 밖에없지. 그녀는 코도 크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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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20% 실화 80%의
아스트랄 로망 로맨스 가장 활극 에세이입니다.

심심해서 써봤어요..
샵 2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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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연은내꺼
10/07/22 18:22
수정 아이콘
요즘들어 이런류의 글이 많이올라오는것같은 ㅠㅠ 없는놈은 그저슬픕니다 ㅠㅠ

농담이구 2편기대하겠습니다 크크
Observer21
10/07/22 18:23
수정 아이콘
보자마자 질럿이 떠올랐다니 어떤 외모를 가지신 분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포프의대모험
10/07/22 18:55
수정 아이콘
마무리에 택을 깜으로써 화룡점정..
10/07/22 20:28
수정 아이콘
글의 느낌이 참 좋군요... 다음 편 기대하겠습니다... ^_^
10/07/23 09:11
수정 아이콘
있다가 없으면 더 슬픈 이런 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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