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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28 00:05:08
Name Marioparty4
Subject [일반] (스압)가족이야기 - 태양, 금성, 그리고 화성과 명왕성(2)
2. 태양이 없으면 태양계는 의미가 없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늘 강렬한 빛을 내뿜기에 마냥 밝게만 보여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태양을 가까이에서 보면 끊임없이 폭발하고 있다. 폭발, 그것이 태양의 키워드.

  우리 어머니는 독특하시다. 독특하다는 것의 의미와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어머니를 알고 있는 내 친구들은 우리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늘 배꼽을 잡고서 웃어대며 ‘정말 특이하다’고 말을 한다.  

‘하하하 너 네 어머니 진짜 짱이다. 정말로 어머니가 그러신단 말이야?’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은 얘기다. 우리 어머니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차차 말해보도록 하자.

  우리 어머니의 고향은 ‘이방’이라는 외딴 시골이다. 지금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그곳에서 사시는 데 어머니 집안은 ‘굉장히 잘 사는 집안’이였다고 한다. 그 굉장하다는 것이 어디의 회장님, 사장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시골 동네 내에서 알아주는, 먹어주는 집안이었단다. 외할아버지는 자그마한 슈퍼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슈퍼가 동네에서 그 곳 하나뿐이어서 그 동네의 모든 주민은 생필품 및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어머니네 슈퍼에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돈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었고 어머니는 부족한 것 없이 비교적 풍요롭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형과 나에게 어렸을 적부터 무던히도 모자란 것이 없게 자꾸 뭘 해주려고 하신 것 같다)  
  어머니는 집안에서 장녀다. 어머니 대에서 항렬도 제일 위이며 밑으로 남동생(나에겐 외삼촌)이 세 명이나 있다. 지금도 몸이 약하신 어머니를 생각하자면 어렸을 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몸이 약해 병원에 자주 가야만 했고 학교를 자주 결석해야만 했다. 집에서 몇날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고 어려운 고비도 몇 차례 넘겼다더라.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지금도 몸이 무척 약하시다. 걱정은 되지만 이게 단순히 몸이 ‘약한 것’이라서 별 다른 해결책이 없다. 병이 있다거나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몸이 지독히도 약하시다. 살짝만 잘못 건드려도 몸에 멍이 들질 않나, 조금만 움직여도 다음 날 근육통으로 쓰러져 버린다. 이런 어머니이니 아들 된 입장으로서는 늘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한 신체적인 나약함을 정신적인 강인함으로 극복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쏙 빼다 박은 것처럼 닮았다. 모녀지간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냐만은 외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어머니가 늙으면 꼭 저렇게 늙으시겠지’ 하면서 활짝 웃는다. 외할머니는 늘 웃고 계신데 그러한 외할머니의 인상이 참으로 푸근하고 좋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가 곱게 늙는다면 꼭 외할머니처럼만 늙길 바랄 뿐이다. 또한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무척이나 사이가 정답다. 대구, 그것도 촌구석이랄 수 있는 이방 태생의 두 분이라 그런지 두 분의 대화는 언제나 날 즐겁게 만든다.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는 대구토박이인 나도 알아먹기 힘든 고유어(?)들이 난무하고 억양이나 어휘가 무척이나 걸쭉해 자칫 잘못하면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나는 늘 두 분의 대화를 집중해서 들으려고 한다. 지금 두 분 사이가 정다운 것과는 별개로 어렸을 때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무척 싫어하셨단다. 인간적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라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가 일을 너무 시켜서 싫었다나? 보통 자식이 몸이 약해 빌빌대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것 같지만, 몸이 자주 아팠던 그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고 어머니는 단순히 몸이 약할 뿐이었던지라 중학교에 진학하고서는 외할머니가 집안일을 자주 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특히 싫어했던 일이 슈퍼 앞에 있는 대청 마루를 닦는 일이었다고 하는 데 이유인즉슨 닦고 돌아서면 또 더러워져서 열심히 닦아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란다. 또 어찌나 커서 닦기가 어렵던지. 커봐야 얼마나 크다고 그거 닦는 게 그리 싫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죽는 것보다 더 싫어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망할 할매, 나는 나중에 대청마루 손바닥만한 집에 시집가야지.’라고 했다. 지금은 그 이야길 웃으면서 하시지만 나는 그 이야길 처음에 들었을 때 무척이나 슬펐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 씨가 된다는 것처럼 어머니는 정말로 ‘대청 마루가 손바닥만한 재산을 가진’ 아버지와 결혼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스무 살 때 아버지와 결혼을 했는데 두 분의 나이차가 12살이니 내가 봐도 아버지가 도둑놈같이 여겨진다. 주변의 반대가 정말 심했다고 한다. 당연하다. 내가 외할아버지의 입장이라도 목숨을 걸고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사랑이면 다 밥 먹여줄 줄 알았던 어머니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외할아버지는 결국 하늘이 두 쪽이 나는 꼴을 봐야만 했다. 원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질 않는가.
  여기서부터는 얘길 꺼내기부터가 슬퍼진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아무것도 몰랐던 어머니는 그 때부터 가사를 배워나갔고 22살 때 형을, 24살 때 나를 낳고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을 했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 때의 일을 말씀하시곤 한다. 가끔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서울 벚꽃이 예쁘다며 한창 청춘을 즐길 나이에 공부해야하는 난 뭐냐’라며 장난으로라도 투덜거리면 어머니는 정색을 하시면서 ‘나는 네 나이 때 네 낳고 네 키우느라 내 청춘 다 보냈다. 아이고, 내 청춘아!’라며 말씀하신다. 상상이 안 간다. 24살 때 한 집안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아내라니.  
  가사와 육아를 병행했던 것이 슬프다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만나고서 지독히도 고생을 하셨기에 슬프다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 되어버렸고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아버지를 대신해 형과 나를 책임져가며 이 날까지 우릴 키워왔다. 아무것도 모를 때의 나는 화목한 가정을 운운하며 어머니에게 ‘그냥 다시 한 번 합쳐볼 생각은 왜 안했어요?’라고 따졌지만 지금은 죽어도 그런 소릴 하지 못한다. 아버지 뒤치다꺼리만 10년을 넘게 하시다가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 모두가 죽겠구나’싶어 형과 나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셨던 선택에 대해서 나는 이제 감히 말을 꺼내질 못한다.

어머니는 가끔씩 외할머니 얘기를 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  

‘옛날 어머니상이라는 게 딱 네 외할머니 얘기다. 난 너 네 외할머니가 우리 엄마지만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너 네 외할머니는 정말로 우리에게 헌신적이었거든. 너 네 옛날 어머니상 떠올리면 다 고두심, 김혜자 아줌마 떠올리지? 그건 새발의 피야. 난 너 네 외할머니가 정말로 자식에게 모든 걸 다 주고 모든 걸 희생해가면서까지 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진단다. ○○아, 말해두지만 난 니들에게 그런 엄마 아니다? 별로 기대하면 안 된다? 난 너 네 외할머니처럼 너 네한테 잘해 줄 자신이 없다.’

  이 말을 듣고 나면 나는 어머니께 송구한 마음에 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아니 만 번이라도 절을 하고 싶어진다. 무슨 그런 말씀을. 어머니 인생에서 ‘자식을 위한 희생과 고통의 나날인 삶’을 빼면 무엇이 남는다고. 그럴 정도로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했고, 우릴 위해  엄청난 희생을 했다. 고생 안한 부모님이 어디 있으며 그 정도는 우리 어머니도 다 했다며 반문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여기에 적는 것들은 鳥足之血 중에서도 혈액 세포 하나만도 못한 부분에 불과하다. 어머니 고생사를 다 적자면 ‘나라면 죽고 말았지’라고 할 이야기들 밖에 없을뿐더러 너무 많아서 그저 생략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로부터 위와 같은 찬사를 들은 외할머니의 대단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일 뿐이고.
  우리 집안은 우리 어머니의 역사다. 모든 것의 시작은 제각각 남자들로부터 일어나지만 끝은 꼭 어머니가 처리한다. 집안을 이끌어 온 것도, 우릴 먹여 살린 것도 다 어머니이다. 그러한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모든 것이다. 각자 비생산적인 일만을 하고 있을 때도 어머니는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우리를 이끌어 왔다. 태양이 괜히 태양이 아니다.
  태양이란 게 단순히 이런 가정사의 측면에서만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격 및 기타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역시 비유가 가능하다. 어머니는 굉장히 기가 세다. 그리고 직설적이며 절대로 속에 쌓아두지 않는다. 가식이라고는 개미허리만큼도 부릴 줄 모르며 무엇이든지 느낌가는대로 다 말을 한다. 무척 밝고 쾌활하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좋게만 평가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가끔은 이런 어머니가 무섭기도 하다. 나는 귀신은 속일 자신이 있으나 어머니만은 속일 자신이 없다. 언급한 성격에 더불어 우리 어머니는 정말 감이 좋고 눈치가 빠르다. 또한 많이 배운 것은 아니지만 순발력도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 가끔 어머니가 작정하고 거짓말을 할 때가 있는 데 이럴 때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게 될 지경이니 이러한 어머니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어머니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사례를 얘기하고자 한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함함하다고 한다는 말을 독자들은 모두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일반 어머니들 얘기고 우리 어머니는 좀 다르다. 우리 어머니는 날보며 대놓고 ‘너는 내가 낳았지만 참~~ 못생겼다. 네 형 봐라. 쟤는 내가 저리 잘 낳아놨는데 넌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냐? 아빠지? 에라이~’라고 한다. 이게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저리 말씀을 하신다. 이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내가 아니라서 정색하며 내가 ‘누가 날 이렇게 낳아 달래요? 엄마가 이렇게 낳았잖아요!’라고 따지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더 큰 목소리로 ‘야 임마! 누가 그 따위로 나래? 엄마는 안 그랬다? 엄마는 잘 낳으려고 했는데 네가 닮길 그 모양으로 닮아놓고 누구더러 큰 소리야!!’라면서 나무라시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밝고 긍정적이며 늘 당당하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우리 집의 태양 그 자체이다. 속은 누구보다도 썩어 문드러져 있으면서도 절대 우리에게 내색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머니가 어머니이기 때문이겠다. 밝고 밝은 태양의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늘 폭발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어머니의, 고생의 연속인 삶과도 맞닿아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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