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7/07/11 00:23:08
Name 7drone of Sanchez
Subject "님은 한 놈만 맡으삼"
모처럼 맞아도 될 정도의 비가 내리는 오후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동전지갑이 포함된 지갑을 갖고 다니는데 언젠가부터 동전이 너무나도 많아진 관계로 틈나면 동전쓰려고 노력하는 30대 프리터족입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나올무렵 이 동네에서 나름 오래된 오락실을 지나치게 되었죠.

'흠.. 요새  몇 년 간 스타만 했구려. 무슨 게임이 있나 동전도 쓸겸 한 번 들어가볼까?'



어릴 적 50원 시절부터 오락실을 다녔습니다. 물론 문방구 앞에 있던 30원짜리 오락기도 했었지만요.

중학교 땐 회수권을 게임머니(100원 coin)로 바꿔주는 오락실이 있어서 자주 들렸기도 했고요. (정확한 교환비율은 생각이 안나요)

고등학교 시절엔 스트리트파이터의 광풍에 여지없이 휩쓸린 사내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오락실이 어느 순간 없어졌습니다. pc방에 잠식당한 여파도 있겠지만 저희동네는 pc방도 드문편이거든요.

각각 비디오샵, 노래방, 다방(?), 커피숍으로 업종변경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강남 금싸라기땅에서 생존하고있는 몇 안되는 오락실을 지금 들어가보려고 합니다.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분은 도시락을 드시고 계셨고 손님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둘 셋이 전부입니다.

문득 어릴적부터 궁금했던 문제가 머리속을 스칩니다. '어느 오락실을 가건 주인아저씨들은 한결같이 신문지에 볼펜으로 글씨연습을 하는걸까'

하지만 도시락을 드시는 관계로 패스하고 오락기들을 쭈욱 들러봤습니다.

아무리 발길을 끊었어도 내가 모르는 게임이 단 한 개도 없을리 없다고 자신만만한채 들어섰지만 철권을 제외한 모든게임이 생소합니다.

그나마 철권이 유행했을 때도 끝물타던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를 플레이했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동전을 넣어봤지만 벙커러쉬에 ㅈㅈ치는 타이밍으로 게임을 끝냈습니다.

그래서 '나갈까' 생각을 했지만 오락실은 너무 조용했고 손님은 너무 없기에 200원쓰고 나가는게 민망할 정도여서 다른 만만한 게임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 중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격투게임이 있길래 무심코 동전을 넣고 자리에서 앉아서 해봤습니다.

첫 판을 정말 마구잡이로 눌러대서 겨우 이겼지만 두째 판은 무리지 싶었습니다. KO패가 예상되서 포기할 무렵

그 순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게임기위에 핸드폰과 아이팟을 올려놓더니 내 옆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동전을 넣어버렸습니다.

'이...이것은 설마 날 이겨보겠다는 초등학생의 도발?'

"야.. 나 이거 잘 못해. 근데 이으면 어떻게해?" 라고 물었더니 이 게임은 1p 2p유저가 서로 협동해서 컴퓨터적을 물리치는 거라고 설명해주더군요.

그러더니 하는 말

"님은 한 놈만 맡으삼"

!$^&&*@^&@&%%&@^%!$%

이런 말을 실제로, 피부에 와닿게 들어보긴 처음인지라 너무 웃음이 나기도 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지만

이내 게임에 몰두를 했고, 그 아이는 전략과 컨트롤에 능한 고수이었습니다.

'이번 판은 적이 쎄니까 피하삼'이라고 알려줄 때도 있었고, 내가 죽을 것 같으면 친절히(?) 내 조이스틱을 뺏어서 컨트롤하는 달인이었습니다.

너무 재밌는 아이인 것 같아서 유심히 쳐다보니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습니다.

명찰에는 학교와 학생이름, 그리고 닮고 싶은 인물이 적혀있더군요.

결국, 빌게이츠를 존경한다던 4학년  아이덕분에  그 게임의 마지막 판까지 깨고 오락실을 떠났습니다.

비 오는 거리를 다시 걸으면서 생각해봤습니다.

통신체의 구어체化, 초등학생, 핸드폰, 아이팟과 빌게이츠.

.......

이상, 아이팟과 빌게이츠 만큼이나 안어울리는 스무살 차이 팀플을 경험한 오후의 단상입니다.

ps> 그 게임은 헤비메탈 이라는 게임이었습니다만 음악은 조용했습니다.
* anista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7-15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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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앙앙
07/07/11 00:46
수정 아이콘
아이팟과 빌게이츠.... 조이스틱까지 뺏어서 살려줫다...
크게 될 놈이군요
NeverMind
07/07/11 00:53
수정 아이콘
아이팟과 빌게이츠라 ...... 재미있네요
이것바라
07/07/11 00:59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어렸을때 오락실서 친구들이랑 4P까지 꽉채워서 삼국전기를 하던 기억이 나네요.
지존본좌=Maestro
07/07/11 01:55
수정 아이콘
글 참 재밌고 좋네요..^^
지하생활자
07/07/11 02:10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좋아합니다 ^^
07/07/11 04:11
수정 아이콘
좋은경험 하셨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Paisano5
07/07/11 06:15
수정 아이콘
초등학생들에게도 배우는게 있네요.......^^
도리토스
07/07/11 07:4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문득 3년전에 편의점 알바하다가 손님에게 얼떨결에 "어서오삼"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황당해하던 손님에 표정이 글쓴이님에 표정과 비슷하지 않았을지=0=..
07/07/11 08:33
수정 아이콘
아침부터 기분좋게 웃고가네요. 좋은 인연이에요? ^-^
나두미키
07/07/11 09:23
수정 아이콘
잔잔하게 웃음 짓게 되네요...음..나도 그 상황이 되면??
07/07/11 11:56
수정 아이콘
으하하하...이 글은 추게행으로를 함 외쳐봅니다.
7drone of Sanchez
07/07/11 18:29
수정 아이콘
아이쿠. 조용한 미소로 인해 기분 좋으신 분이 계시다니 그것만으로도 저에겐 기쁨이죠.
지저분한 글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
하얀 로냐프 강
07/07/11 19:4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소리감투
07/07/11 19:59
수정 아이콘
흐흑, 그래도 부럽네요. 오락실이 주변에 계시니...
피씨방 생기면서 울 동네 오락실 전부 초토화되버린 ㅠㅠ;;;
그나마 있는 건 기계 땡기는 성인오락실만 두어개...
아, 오락실에 캐딜락이랑 후크하던 생각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Alchemist
07/07/11 23:36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경험하셨네요............ 저도 나이먹고 오랜만에 피씨방가서 어린애들과 스타를하는때가 올수 있을까요.
올빼미
07/07/12 00:46
수정 아이콘
피천득님의 향기가 느껴지는글이네요.
07/07/12 16:05
수정 아이콘
짧지만 정말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07/07/12 22:30
수정 아이콘
으하하하 그 꼬마 너무 귀엽네요!
07/07/15 10:51
수정 아이콘
로긴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글이네요.
잔잔한 웃음을 짓게하는 한편의 수필입니다.

피지알에 좋은 글 쓰던 분들은 모두 떠났다. ----- X

세상은 정말 넓고, 멋진 분들은 많다. ㅡ Yes ^________________^vV
07/07/15 10:51
수정 아이콘
스티브잡스와 MS!
BrownEyes
07/07/15 12:38
수정 아이콘
정말 pgr에 어울리는 글이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리네커
07/07/15 14:29
수정 아이콘
구수한 필체가 저를 오늘 하루 즐겁게 만드네요 감사합니다
빛나는 청춘
07/07/15 20:35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들어왔는데.. 읽으면서 입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그 꼬마와 통성명이라도 하지 그러셨어요..^^
갑자기 기분이 너무 상쾌해지네요. 글 잘읽고 갑니다.
아쉬운국자
07/07/15 22:38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오락실로 가고고 싶으신 분들은 펌프 공식홈페이지로 가 보세요. ㅇㅅㅇ
일정 규모 이상의 오락실들(그러니까 펌프가 있는 데)은 펌프 공식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고뭉치
07/07/17 01:58
수정 아이콘
^^ 꼬마가 정말 귀엽네요! 잘 봤습니다~
07/07/19 00:27
수정 아이콘
글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짜증나는 일 있거나 할 때 한 번씩 클릭해 보면 기분이 풀어질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학교 갔다 오다가 몰래 들르곤 했던 뒷동산 상가 옆의 허름한 오락실이 떠오르네요. 100원 두께로 청테이프를 감은 10원 짜리 한 번 넣으면, 1시간여 남극 탐험 끝판 깰 때 까지 신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요. (혹시 오락실을 경영하시는 분 계시면 죄송합니다. ^)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건, 매번 끝 판은 깨도 한 번도 공주가 살아 있던 적이 없었다는 거. 한 마리도 안 죽고 깨야 공주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돌긴 했는데, 확인을 못해 봤어요. 중간에 나오는 보너스 생명 죄다 주워 먹고 나중엔 생명이 오십 몇 마리까지 올라가지만, 중간에 꼭 한 두 마리 씩은 죽는 바람에…

PC방 생긴 후로 오락실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한 2년여 전인가,,, 신촌 거리에 있는 대형 오락실에서 옛날 게임들을 다수 발견하고는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쪽에 갈 일이 생기면, 혹시 아직도 있나 찾아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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