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6학년 생일이었을거다. (나는 졸업앨범에 국민학교라고 찍혀있는 마지막 세대다.)
과정이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구로동에 있는 당시 애경백화점 1층에 있는 피자헛에서 생일파티를 했다. 지금도 의아하지만
그때는 더 의아했다. 왜냐하면 우리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구구절절 궁상 일화를 쓰다가 그냥 한줄로 정리했다.
『우리집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8만원짜리 단칸방이었다. 』
연탄보일러를 땠고, 국민학생인 내가 허리 구부정하게 있어야 하는 다락이 있었다. 다락에는 소켓을 돌려서 키는 방식인 백열등을
전구로 사용했었다. 그 공간에서 책가방도 싸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공테이프에 녹음하고 그랬다. 나는 그게 내 방이라고 생각했었다.
철이 빨리 들어 나는 우리집이 가난하다는것을 꽤 일찍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다들 가는 유치원에 가지 않았고, 그 시간에 집에서 책을 봤다.
컴퓨터랑 게임기가 있고 방이 몇 개나 있는 친구집을 들락날락 하다보니 자연스레 열 살전에 부끄러움을 알았다.
그래서 친구를 집에 데려온적이 없다.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어울려 놀던 동네친구들은 여전히 집에 자주 왔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사귀게 된
학교 친구들에겐 우리집이 어느 동네인지도 발설 하지 않았다. "그 동네" 면 못사는 동네인거 다들 알았으니까 말이다.
그 때 유행처럼 친구들 사이에선 생일파티를 했는데 보통은 주말에 집에 초대하면 생일 맞은 친구 엄마가
잡채니 갈비니 음식도 해주시고 우리도 케잌에 초 꼽아서 노래도 불러주고 손바닥만한 카드에 편지도 쓰고 학용품 같은 선물도 주고 받고
했다. 나는 교우관계가 아주 좋았던 편이라 여러 생일파티 많이도 다녔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엄마는 친구 생일 파티 간다 그러면
선물사라고 꼭 몇 천원을 주셨다. 뭘 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학용품 같은 걸 많이 선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보면 좀 날라리 같은 애들은 친구 생일 선물로 막 은반지 같은 것도 사다주고 그랬다. 만원, 만이천원 했던거였는데 어린 마음에도
참 간지난다고 생각했었다.
여튼 다시 내 생일파티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이전까지 나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돈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건
장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맘때쯤이 내 생일이라 친구들은 파티를 하지 않은 내 생일을 궁금해 하곤 했었다. 다 했는데 나만 안했으니...
그렇게 졸업을 앞둔 6학년 생일을 맞았는데 어느 순간 피자헛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축하를 받고 있었다.
파티가 열리게 된 과정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해달라고 떼를 썼는지 아니면 엄마가 졸업 선물로 해준것인지...
그런데 파티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남녀 비율 비슷하게 열명 정도 모였고, 패밀리사이즈로 두판, 레귤러로 한판 시킨것 같다.
당시에 내가 우리반 여자애 하나를 좋아하는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생일축하 쪽지의 내용도 다들 "수정이랑 잘 되길 바래" 였다.
은반지도 두개나 받았었다. 수정이.. 지금 결혼 했겠지?
그게 내 인생 첫 피자 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 첫 돈까스, 첫 햄버거는 기억이 나는데 첫 피자는 잘 모르겠다. 친구네 집에서 먹었던것
같기도 하고...여튼 국민학교6학년 생일파티를 참 있어보이게 한 덕분에 난 피자에 대한 기억이 좋다. 맛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날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있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하루는 꼭 뭘 시켜 먹는다. 엄마의 밥하는 수고를 한끼라도 줄이는 목적도 있고, 외식하는 기분 내는것도 있다.
그래봐야 중국집에서 식사 두개에 탕수육 시키거나, 치킨 아니면 피자중에 하나지만 말이다.
엄마는 피자를 참 좋아한다. 의사를 물어보면 백이면 백 피자 먹자고 한다. 냉장고에 남은 맥주를 처리하기 위해 혹은 갑자기 특정 브랜드의
치킨이 먹고 싶어져 치킨 먹자고 하면 알아서 시키라고 하면서도 목소리에 힘이 빠지는게 느껴진다. 치킨 나중에 먹지 뭐 하고 피자를 시켜서
종이박스를 딱 열어주면 되게 좋아한다. 초창기엔 포테이토류를 좋아하시더니 이제는 내가 알아서 시키는 메뉴 아무거나 다 좋아하고
잘 드신다. 동네피자, 도미노, 파파존스 등등 특정 브랜드, 특정 메뉴를 더 애정하고 그런것도 없다. 그냥 피자를 참 좋아한다.
35년 엄마랑 살면서 엄마 본인이 뭐가 먹고 싶어 사줘!! 라고 한건 아마 피자와 돼지갈비 말고 없지 싶다.
아마 그날 엄마는 내 얼굴을 봤겠지... 우리 막둥이가 저렇게 기 살아있는 모습을..
피자를 앞에두고 친구들 앞에서 당당해진 늦둥이 아들래미의 모습을...
엄마는 피자를 좋아한다.
나는 엄마를 좋아한다.
p.s : 6.25때 사진 아님...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6-22 16:26)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