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제 마음대로입니다 _-)/~
1. 정도전
1차 왕자의 난으로 술 먹다가 죽습니다. 참 안습하죠. 조선의 설계자였지만 반역자로 낙인 찍힙니다. 그래도 이후의 선비들에게 두루 인정받죠. 왕은 유능할 수도 무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능한 정승들이 나라를 이끌면 된다고 생각했죠. 입헌군주제가 떠오르는 모습입니다. 이후의 역사도 그 길에서 아예 벗어나진 않았죠. 이방원은 그를 죽였지만 자식들은 곧 신원됐고, 부족하지 않게 삽니다. 마지막 양심이었을까요?
유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전에 공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
실록에서 나오는 그의 최후, 하지만 바로 밑에 전혀 다른 말이 있죠. 이방원 편에 붙자고 아들 정담이 말 하니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이미 고려를 배반했는데 지금 또 이편을 배반하고 저편에 붙는다면, 사람들이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홀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유명한 걸로는 죽기 전에 읊었다는 자조가 있죠. 실록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양조에 한결같이 공력을 다 기울여 / 서책 속 교훈을 저버리지 않고 떳떳이 살아왔네
삼십 년 긴 세월 쉬지 않고 이룬 공업 / 송현방 한 잔 술에 모두 허사가 되었구나.
2. 성삼문
사육신으로 가장 유명한 이죠.
북소리 둥둥둥 목숨을 재촉하는데 / 서풍에 뉘엿뉘엿 해는 지려 하누나
황천에는 주막도 없다 하는데 / 오늘밤엔 뉘 집에 자고 갈거나
그가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읊었다는 절명시입니다
3. 신숙주
"인생이란 여기서 그치는가!"
세조의 쿠데타에 함께했던 인물, 그 때문인지 그의 능력은 별로 유명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조선시대에 손꼽을만한 먼치킨이었는데요. 위의 성삼문과 비교하면 참 반대 인생을 산 것 같습니다. 왕에 대한 충성으로 죽었던 성삼문과 자기 능력을 펼치면서 살았던 신숙주... 위의 유언은 연려실기술에 적혀 있는 것으로 저 말이 그의 인생을 잘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능력 다 펼치고 누릴만큼 누리는 삶 말이죠.
실록에 나오는 유언은 "장례는 간소하게 치르고 불교의 법을 따르지 말며 저승 가서 읽을 책 몇 권을 관에 넣어 달라."입니다.
4. 한명회
"처음 부지런하고 나중에 게으른 것은 인지상정이니, 원컨대 나중에 삼가기를 처음처럼 하소서."
조선의 풍운아 한명회, 뭐 부지런히 살긴 했죠.
5. 노사신
"신이 바라는 것은 특별한 것은 없으나, 다만 경연에 부지런히 임하시고 형벌과 시사는 법도에 맞게 하소서."
연산군 얘기할 때 유언을 넣지 않아서 여기에서나마 넣습니다.
6. 조광조
기묘사화는 정말 기묘합니다. 조광조에게 끝없는 신뢰를 보여줬던 중종은 그를 죽이려고 온갖 애를 썼고 성공했죠. 기묘사화를 함께한 남곤조차도 반대한 거였습니다. 결국 조광조 그룹 중 그 혼자만 죽죠. 사관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전일에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고 하루에 세번씩 뵈었으니 정이 부자처럼 아주 가까울 터인데, 하루아침에 변이 일어나자 용서없이 엄하게 다스렸고 이제 죽인 것도 임금의 결단에서 나왔다. 조금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도타이 사랑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
그 자신도 이런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 합니다. 그는 옥중에서 술을 먹었고 가장 많이 취했으며 국문장에서는 국문을 맡은 이장곤에게 올라가 술주정을 합니다. (...) 유배된 후 중종은 그를 사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사사건건 대립했던 정광필은 물론 그를 몰아낸 남곤까지 슬퍼했다 하죠. 그에게 금부도사 유엄이 오자 이런 말을 했다 합니다.
"사사의 명만 있고 사사의 글은 없소?"
그래서 유엄이 쪽지(아마 조광조를 죽이라는 명령서겠죠)를 보여주니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전에 대부 줄에 있다가 이제 사사받게 되었는데 어찌 다만 쪽지를 만들어 도사에게 부쳐서 신표로 삼아 죽이게 하겠소? 도사의 말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을 뻔하였소."
죽음이야 담담하게 받겠지만 정말 이게 왕명인지 마지막까지 의심된 거겠죠. 그러면서 누가 어느 벼슬에 있는지 묻고 그럼 내가 죽는 게 맞겠다고 합니다. 유엄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하니 이거 참...
"관을 무겁게 하면 먼 길 가기 어려우니 관을 가볍게 하라."
그의 유언입니다.
이후 기묘사화에 연루된 건 오히려 참된 선비의 상징이 됩니다. 하지만 사림이 지배한 조선이 그가 주장한만큼 아름다운 나라는 아니었죠. 그런 모습은 그와 그가 이끌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구요. 자기편 사람만 뽑고 다른 이들은 모두 소인으로 만드는 현량과만 봐도 그들의 몰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의 완전한 몰락은 안타까울 따름이죠. 그 후 명종대까지 권신들이 판치는 세상이 됩니다.
8. 남곤
그 조광조를 몰아낸 남곤, 하지만 그렇게 나쁘게만 볼 인물은 아닙니다. 능력도 있었고 사치하지도 않았구요. 애초에 그 역시 사림이었고, 차세대 리더였습니다. 조광조와 다른 게 있다면 조광조는 너무도 수가 많아진 공신 세력(훈구파)를 몰아내려 했지만 남곤은 그들과 손을 잡은 거겠죠. 조광조 사후 권신으로 그럭저럭 나라를 이끌지만 시대의 병을 치유하진 못 합니다. 뭐 딱 그 정도가 중종이 바란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정치적인 능력은 좋아서 조광조는 물론 최강급 권신이었던 김안로도 한 큐에 보냅니다.
"내가 헛된 이름으로 세상을 속였으니 너희들은 부디 이 글을 모두 태워 나의 허물이 더 무거워지지 않도록 해라."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왠지 저 세상에서 조광조를 만났으면 사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9. 이황
"저 매화에 물을 줘라"
그의 매화사랑을 볼 수 있죠.
10. 김상용
"속이 답답하니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불을 가져오라."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미리 준비한 폭약에 불을 붙여 자폭합니다. 주인의 죽음을 슬퍼한 종이 말을 듣지 않자 저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원래 그는 담배를 싫어했다고 하구요. 인조는 이것도 의심해 실수로 폭사한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만 -_-;
11. 송시열
조선 후기를 관통하는 보스형 정치인이죠. 효종 때 아주 극진한 대우를 받지만 현종 때부터 몰락을 시작, 숙종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결국 사사됩니다. 성리학의 교조화를 이끌었고 파벌 싸움에 아주 능했죠. 그런 그의 모습에 실망한 소장파가 소론을 만들기도 했죠.
죽음의 결정적인 원인은 경종의 왕세자 책봉을 반대한 것, 이걸로 또 환국이 일어납니다. 남인은 지난 효현종 때랑 특히 환국을 통해 그에게 큰 한이 있었고, 죽음은 일사천리로 다가왔죠. 상경하는 길에 금부도사를 만나 사약을 받습니다. 이 때 아들이 나라에서 형벌을 꺼리는 날을 말하며 이를 따라야 된다고 했는데, 아마 천천히 가도 된다는 식의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송시열은 이렇게 답했다 하죠.
"내가 병이 심하여 잠시를 기다릴 수 없으니, 명을 받는 것을 늦출 수 없다."
그렇게 정읍에서 금부도사를 만났고, 몰려온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학문은 마땅히 주자를 주로 할 것이며, 사업은 마땅히 효종께서 하고자 하시던 뜻을 주로 삼을 것이다."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천지가 만물을 생(生)하는 이유는 성인이 만사에 응하는 이유는 ‘직(直)’ 일 뿐이다. 공맹 이래로 서로 전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곧을 ‘직(直)’자인데 주 부자(朱夫子)가 문인에게 부탁한 것도 이에 벗어나지 아니한다."
그렇게 사약 세 사발을 들이키고 난 후에야 죽었다고 합니다. 처음 걸로는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해졌다고 하죠 (...) 금부도사는 제발 좀 죽어줍쇼 했을 겁니다.
신권의 상징으로 왕의 성향에 관계없이 정통성도 위협하는 강한 말을 마구 던졌는데, 이건 서인의 성향과도 관련있습니다. 서인은 기본적으로 왕은 으뜸 사대부 수준으로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겼고, 남인은 왕을 중시했습니다. 신분제에 대해서도 서인은 완화를 주장한 반면 남인은 강경했죠. 정조 때 노론 중 벽파가 생기고 남인은 왕의 뜻에 따라 사도세자 추숭을 주장한 것 역시 생각해볼만하구요.
아무튼 마지막까지 성리학과 효종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가면서 그는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는 송자가 됐고 노론은 조선을 지배했죠. 이후의 왕들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구요. 정조 같은 경우는 유교 근본주의를 밀면서 그를 더 띄워줬구요. 조선이 계속됐다면 여전했겠습니다만, 망해서 지금은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죠. 비판이 너무 심할 정도입니다.
12. 정약용
"집 뒤의 동산에 매장하고 지관에게 물어보지 말라."
지관은 풍수지리사로 좋은 땅을 찾지 말고 그냥 묻어달라고 한 것이죠. 그 외에 이것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가지 말고 버티라."
남인으로 지역 유지가 될 정도의 배경이 없었던 그의 집안이 서울을 떠나면 모든 것이 끝이었죠. 너무나도 오랜 유배생활의 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해서 말하자면 너무도 많으니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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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습한 죽음 두 개
13. 강상인
"나는 죄가 없는데 매를 견디지 못해서 죽는다!"
공신으로 병조판서까지 됐음에도 세종의 장인 심온을 죽이는 미끼가 된 이죠. -_-; 결국 그의 말대로 매를 견디지 못 해 태종이 원한 대답을 해주고 갑니다.
14. 허균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
... 광해에서 충분히 말 했죠 (...) 이상을 위해 나라를 뒤엎으려 했다... 는 걸 갈아엎어버리는 것 같은 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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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정도? ( - -)a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4-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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