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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4 10:00
경기 보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바르샤가 공격을 만들어 나갈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았죠. 정말 고전하는 경기들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하프라인도 못 넘고 갇혀서 두들겨 맞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1선 압박은 뚫어내고 뮌헨 진영까지 볼은 올렸죠. "공격을 하려면 볼을 쥐어야 하는데 볼이 안 와요 ㅠㅠ."라고 징징거릴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죠. 이는, 문제가 팀 단위 전술에 있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팀 단위 전술 자체, 개연성 있고 하나하나 차근차근하게 확률 높게 전진하는 바르샤 특유의 극한의 정공법적인 방법 자체가 문제였다면 오늘 하루 종일 하프라인조차 못 넘었겠죠. 흔히 말하는 가패를 당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효한 공격은 거의 못 만들었죠. 왜냐? 세부적인 공격 패턴이 하나하나 다 봉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챠비가 구심점이 되어 빨빨거리며 열심히 볼 끌어 올려주고 1선 압박 허둥대지 않고 벗겨줘봐야 전방에서 할 수 있는 공격 옵션이 죄다 봉쇄 당하면 득점은 불가능합니다. 메시-아우베스나 메시-챠비의 2대1 플레이, 다른 선수들이 미끼 노릇해줄 때 오른쪽에서 파고들어오는 메시, 왼쪽과 중원을 오가면서 어그로 끄는 인혜, 그리고 이 사이에 침투하는 양 윙과 알바....와 같은 것들이 죄다 읽히고 차단 당했죠. 이렇게 철저하게 공격 패턴이 읽히는 경기에서는 점유율을 66%가 아니라 90%를 먹어도 골 넣기는 힘듭니다. 채치수의 공격 패턴을 신현철이 하나하나 다 꿰고 있는 상황이라면, 송태섭이 아무리 정교하게 채치수에게 볼 투입해봐야 백이면 백 다 신현철에게 쳐발린다는 거죠. 문이 있어야 들어가는데 문이 없는 상황이죠. 게다가 이렇게 패턴을 읽혀 볼을 뺏긴 뒤에 이루어지는 뮌헨의 공격은 하나하나 혈도를 공략하듯 공간 빈자리로 정확하게 들어가고... 이런 점들을 다 고려해야 '왜 오늘 바르샤 선수들이 평소보다 컨디션이 나쁜 것 같지도 않음에도 쪽도 못 썼는지.'가 설명이 됩니다. 자신의 축구를 100%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대응할 수 없는 의외의 공격을 하지 못한다면, 상대가 자신이 어떻게 할지를 다 알고 있다면, 전력을 발휘하고도 이길 수 없게 된다는 거죠. 맵핵 당하고 게임한 것과 같습니다. 그 점에서 오늘의 뮌헨의 승리는, 전력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전술, 특히나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이며 거시적인 차원의, 끽해야 포메이션이나 팀 스타일 정도로 여겨지는 전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디테일한, 패턴 플레이에 대한 연구와 연동하는 조직적인 부분전술의 승리일 겁니다. 사실 바르샤의 대패를 예상하긴 했습니다만... 주변 지인과 "관건은 누가 진출이냐가 아니라 바르샤가 어느 정도로 깨지느냐가 아닐까 싶다."고 말할하기도 했고요. 다만, "제가 생각한 바르샤의 패배 패턴은, 바르샤가 하프라인도 잘 못 넘어오고 자기 진영에서 폭탄을 넘기는 것처럼 볼 돌리기 급급해서 계속 두들겨 맞다가 탈탈 털리는, 즉 팀 조직 싸움의 압도적인 열세에 의한 패배일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라 바르샤가 할만큼을 할만한 여지가 있는, 그래도 전선을 자기 진영이 아니라 하프라인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고 뮌헨 진영에서 볼을 돌리는 것이 가능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격 방식이 다 간파당하면서 발렸다는 것이 뜻밖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코너에 몰아놓고 패는 게 아니라, 링 중앙에서 상대 공격 하나하나 다 피해나가면서 여유있게 정타만 골라치는 그런 거랄까..전자 같은 경우 다음에 붙었을 때는 조심하면서 자기 복싱을 할 기회를 만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지만, 후자 같은 경우에는 답이 없죠.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도 진 거니까요.
13/04/24 10:18
뜬금없이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의 임요환, 김정민이라는 전혀다른 스타일을 비교했을 때 썼던 말이 생각나네요.
'아무것도 못 해보고 지는' 경우와 '할 거 다 해봤는데 지는'경우. 확실히 후자였던 것 같고, 이렇게 나름대로 할 거 다 해봤는데 지면 정말 다시하기 싫죠;;;
13/04/24 10:15
여하튼 <만약 뮌헨이 수 년 간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면> 오늘의 이 경기는 유럽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히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바르샤 이전에도 왕조를 건설한 팀들은 많고, 그네들 역시 흥망성쇠를 겪었습니다만, 바르샤와 그네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죠. 디 스테파노의 레알은 주전 대부분이 30대가 되어서 자연사에 가깝게 스러져갔고, 아약스는 크루이프가 바르샤 이적하면서 망한 것이고, 리버풀은 헤이젤 참사라는 사고로 인해 끝이 났고, 밀란은 레알과 비슷하게 자연사에 가까웠죠. 다시 말해 망할 때 되어서 망했거나, 우연한 계기로 몰락한 것이지, 자신들이 파워 밸런스 경쟁을 벌이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에게 꺾여나가면서 포스와 광휘를 헌납한 케이스가 아닙니다. 헤게모니의 전환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대패를 당하며 무너진 것도 아니고요. 더구나, 그네들의 성과를 가리울만한 후발 주자도 당분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춘추전국이었죠. 헤게모니가 끝난 이후에도 특유성과 독보성을 잃지 않았기에, 후대에도 널리 기억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만약 뮌헨이 수 년 간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면, 바르샤는 거의 역대 유일하게 후발 주자에게 완패당하며 헤게모니를 넘겨준 팀이 됩니다. 그것도 주축 멤버들의 나이가 만년에 달하지 않은, <우리가 노쇠한 탓>이라고 변명할 수 없는 상태에서(오늘도 챠비 외엔 다 만 30살 이하였고, 그나마도 챠비가 제일 잘했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 뮌헨이 하는 것에 따라> 바르샤의 평가가 후대에 떨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거죠. 이영호 선수가 한한중미를 통해 스1의 올타임 넘버원이 되자, 그 이전까지 수 년 간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이제동 선수가 그에 가리웠듯이 말이죠. 물론 뮌헨이 아직 헤게모니 장악은 고사하고 챔스 우승을 확정짓지 못한 지금이긴 합니다만,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도 가능은 하다는 것이며, 그리 진행되었을 경우 오늘 경기는 유럽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 중 하나로 기억되리라는 의미입니다.
13/04/24 12:53
축구에대해 관심은 있지만, 경기보는 눈이 없어서 하이라이트와 댓글만 읽다보니 스1 비유는..짠하네요.
몇년간 저그를 이끌었고 09는 이제동의 해였는데요. 10이영호처럼 완벽하게 독식하지는 못했지만.. 스1 가끔 회자될때마다 임이최마호 언급에 이제동은 곁다리식으로 어쩔때만 언급되는게 참 안타깝죠..
13/04/24 13:57
근데 여기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이 펩 감독 등장전에는 바르샤는 최고의 팀이긴 하나 지금처럼 역대급은 아니었죠
아약스처럼 중요한 퍼즐의 이동에 따라 다시 전으로 돌아가는 것에 가깝다고 봅니다. 펩이 떠남에 따라 역대급 팀에서 다시 주요 최고 팀 수준으로 돌아간거죠. 원래 자리로요. 예전의 포스가 그대로 꺾여나갔다기에는 선수들은 존재해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핵심 퍼즐 하나가 비워진 상태니깐요.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아약스보단 강도는 약해도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해 봅닌다. 그리고 역대급 팀 이후 춘추 천국 시대에 대해서는 챔스 방식 변경 이후 역대급 팀이 바르샤 밖에 없었는데 뮌헨이 해낼지도 궁금합니다. 해낸다면 휴 장난 아닌거죠.
13/04/24 10:17
뮌헨의 전원 압박모드가 역시 이번 경기에서도 빛을 발한 모양이네요.
이야.. 올해야말로 우승할려고 제대로 마음먹은 모양새네요. 하긴 첼시와의 결승전 때도 뮌헨이 우세하다는측이 많았는데도 졌으니 그럴만도 하겠습니다만..
13/04/24 10:22
바르샤는 확 물갈이 하지 않는 이상 내년시즌도 양민학살만 할뿐 강팀에게는 여지없기 깨질겁니다. 네이마르 하나 데려온다고 변할것도 없고.
올해 의장선거가 관건이죠
13/04/24 10:25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를 보면 과르디올라의 능력이 새삼 느껴지더군요. 부상도 거의 없이 선수관리를 하면서 무한대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공격전개가
물흐르듯 이루어 졌던 팀인데.... 내년 바이언이 어떤 축구를 할 지 정말 기대됩니다.
13/04/24 10:26
좋은글 감사합니다. 구밀복검님의 댓글도 정말 좋네요. 오늘 판정이 좀 그렇긴했으나 아무래도 4골차는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정말 바이에른 올해 트레블 가나요. 게다가 내년엔 괴체에 펩까지 온다면 정말 The new era가 시작될지도..바이에른과 레알 결승전하길 기대합니다!
13/04/24 11:07
바르샤(그리고 레알)는 펩이나 티키타카가 없을 때도 리그에서는 항상 신계에서 노는 팀이고, 유럽 대항전이 중요한데 챔스 4강 정도에서 이렇게 한쪽이 무너지는 경기는 근래 못 본 것 같네요..
그래도 리그에서는 내년도 내후년도 우승 경쟁 하겠습니다만, 티키타카가 무적 전술도 아니고 5년을 우려먹었으니 다른 팀이 해결책을 내놓을 때도 되었지요.
13/04/24 11:16
새벽에 경기 못 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추신수 경기 보다가 새벽 챔스 경기를 깨닫고 결과를 확인한 순간!! 헐-_-
4:1참사를 그것보다 심하게 4:0으로 갚아주네요. 점유율 축구라는 게 허수에 가깝다고 항상 느꼈는데 경기를 보지 못했지만 본문 내용과 안 되는 날 바르샤의 기억을 토대로 왠지 상상이 가네요. 챔스 한 쪽은 거의 결정 난 거 같고 나머지 한 쪽이 문젠데.. 내일은 꼭 본방을!!
13/04/24 11:23
09-10 때였죠. 맨유는 그 전시즌 준우승팀이었고, 뮌헨은 누캄 참사를 당한 다음 시즌이었죠. 게다가 맨유는 그 전 경기에서 밀란을 홈, 원정에서 7:2로 누르고 올라왔고, 뮌헨은 피오렌티나 상대로 겨우 올라왔구요. 분위기는 맨유 쪽이 좋았는데, 뮌헨도 강했고 결정적으로 하파엘이 퇴장당하면서 끝났죠.
13/04/24 11:23
깜빡하고 있다가 PGR에서 이 글 제목을 보고 오타인줄 알았습니다. 홈에서는 뮌헨이 이기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4:0이라니...
13/04/24 11:30
꾸레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팀의 흐름이라고 봅니다. 언제까지나 트레블을 노리는 클래스를 유지할 수 없죠.~
2000년대 초반 암흑기 생각하면 지금도 감지덕지 입니다.
13/04/24 11:30
작년 뮌헨도 챔스 준우승 팀일정도로 강팀이었는데 올해 뮌헨은 그 뮌헨에 마르티네즈와 단테 영입으로 두 단계 업글 됐죠. 오늘 경기에서도 그 부분이 상당히 작용한 거 같고..
내년 뮌헨은 여기에 괴체가 더해지는 업글을하는데 어떻게 되려나요. 감독이 바뀌는 변수가 있다보니 팀 체질이 상당히 바뀔 거지만 그 감독이 펩이니 역시 또 업글이려나요? 뮌헨은 내년이 더 기대되는 팀이네요.
13/04/24 11:36
이번 경기는 하인케스의 대바르셀로나 맞춤 전술과 정확하게 이를 수행한 선수들, 그리고 Plan B가 없는 빌라노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봅니다.
13/04/24 11:37
바르샤는 고동안 약점으로 지적되던게 뻥 하고 터진 느낌이네요.
뮌헨은 올시즌도 괴물인데 참... 올시즌 종료 후 여름이적시장에서 바르샤의 행보도 주목해야할듯...
13/04/24 11:48
뮌헨이 이번시즌 트레블을 하고 지난 역대급 팀들처럼 수년간 유럽을 지배하게 된다면..
펩은 역대급팀만 2번을 지휘하게 되는군요 크크..
13/04/24 11:55
펩 에펨하나요.. 진짜로..
자기가 만들어놓은팀 다른팀 감독으로 가서 깨기?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튼 다음시즌 뮌헨이 기대됩니다!
13/04/24 12:49
바르샤에선 메시, 사비, 인혜라는 선수들을 갖고 있었고 뮌헨은 2년연속 챔스 결승이 유력한 팀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체 -_-;
펩이 시즌 중 뮌헨 오피셜 떴을 때 당시에도 커리어 안전빵으로 뮌헨 간 거라는 얘기가 많긴 했죠. 못해도 리그 우승이 보장되는 팀이니.. 뭐 어떻게 보면 복이죠. 이런 팀 감독해도 성적 못내는 사람이 있는데.. 바르샤에서도 성적 부담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펩인데 뮌헨에서도 펩 스트레스가 심할 거 같습니다 크크 기본적으로 리그, 컵 우승은 깔고가는 팀이니 하나라도 미끄러진다면.. 저는 내심 기대도 되네요 크크
13/04/24 13:17
어떤 종목이든 경기에서 뛰는건 감독이 아닌 선수들이기 때문에 선수빨이죠. 좋은 선수 없이 승리하는건 불가능한데 이해가 안되는 말이에요.
13/04/24 13:30
그건 어쩔수 없는거 같네요..차라리 정비가 안된 어수선한 강팀 (첼시나 아스날같은), 투자는 이뤄지는데 성과가 없는 (리버풀, 맨티시)
같은 팀에 가지 않는 이상이요..아니면 중하위권 팀 맡아서 챔스를 보낸다던지.. 퍼거슨처럼 장기집권에 성공해서 꾸준히 성적을 내면 선수빨 소리는 안듣겠네요.
13/04/26 11:13
성과가 없다뇨 맨시티 리그 2위 팀인데요...1위팀은 맨유입니다. 리그 20번 우승에 epl출범이후 13번우승 4위 밑으로 가본적이 없는 팀이요
13/04/24 16:03
오래된 독일 곬수팬으로, 독일 축구는 항상 냉철하죠. 상대의 약점을 취하고 덫을 깝니다.
한번 득점을 하고 몰이붙일법하지만 또다시 차근차근 덫을 깝니다. 앞서고 있어도 침착하고 반면 뒤지고있어도 침착하죠. 이런 색깔이 독일 대표팀이 대승을 많이 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저는 솔직히 작년으로 놓고 본다면 뮌헨과 바르샤가 동급이라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년결승에서 못붙은게 좀 아쉬웠죠. 올해는 뮌헨이 좀 더 전력상 낫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좀 더 파격적이었네요. 뮌헨 축구가 참 스마트 합니다. 영리한 플레이를 잘하죠. 단순 활동량에 의한 압박도 아니고.. 특히 특별한 테크닉보다는 영리함으로 풀어가는 뮐러가 딱 어울리는 팀이죠.
13/04/24 16:28
싸이클이란게 신기하네요. 영감님이 챔스 결승에서 패배하고 바르셀로나의 싸이클도 언젠가는 돌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때 그게 과연 오긴 올까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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