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출처:
https://theathletic.com/1725884/2020/04/09/real-madrid-juventus-zinedine-zidane-lippi/
번역 출처:
https://www.fmkorea.com/2862319083 에펨코리아 KUEE
선수로서의 지네딘 지단은 프랑스 국가대표팀 및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중요한 순간들에 입증한 자신의 클래스 덕분에 늘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1998년 월드컵 결승전과 2002년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지네딘 지단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는 유벤투스 시절이다. 특히 마르셀로 리피 감독 밑에서 뛰었던 1996년부터 1999년까지의 세 시즌은 현재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요구하는 경기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18년 이탈리아의 신문지 라 스탐파와의 인터뷰에서 리피는 "지단은 제 제자입니다. 데샹과 콩테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족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네요."라고 답했다.
데샹과 콘테의 감독 철학에 있어서 리피의 영향력은 분명히 나타난다. 두 감독 모두 팀적인 시스템과 상대 팀을 컨트롤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반응성 강한 감독들이다. 그들이 선수 시절에 미드필더로 뛰면서 부여받았던 역할을 고려한다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1998년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프랑스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데샹은, 세리에 A에서 뛰었던 경험이 자신의 멘탈리티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늘 주장했다.
"우리 세대는 이탈리아 축구와, 그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모든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술적, 정신적인 요구를 끊임없이 마주하면서, 저는 제게 주어진 책임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되었고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죠."
지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98년 자국에서의 월드컵이 열리기 2년 전에 보르도를 떠나 유벤투스에 합류한 후 어떻게 발전해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지단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저는 더욱 강력한 정신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건 리피 감독님 덕분입니다."
데샹과 콩테에게는 상대의 플랜을 부수고 지워버리는 역할이 주로 주어졌던 반면, 지단에게는 자신의 번뜩이는 재능을 이용해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리피는 지단이 팀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들어 팀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다고 늘 주장해왔다.
"지단은 현대 축구의 10번입니다. 그는 볼을 빼앗기면 상대에게 달려들었죠. 팀을 돕겠다는 결연함과 훈련을 통해 얻은 강력한 피지컬을 이용해 공을 되찾아오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지단은 리피 덕분에 팀을 위해서 항상 자신의 재능을 쏟아붓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며 그를 칭송했다. "감독님은 제게 있어 불 켜는 스위치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불을 켜주면 무언가에 대해 헌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곤 했어요.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저는 축구를 할 때 제 스스로 즐기는 것에 가장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토리노에 온 후에는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가장 중요해졌죠."
20년의 세월이 빠르게 흘러갔고, 2016년 1월 지단은 라파 베니테즈를 대신해 베르나베우에서 자신의 첫 1군 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우아했던 순간들과 갈락티코로서 보여주었던 그의 천재성을 몹시 떠올렸다.
베니테즈의 '효율적인' 팀 구성은 많은 스페인 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지단이라면 그의 선수 시절 재능을 활용해 팀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또한 레알 마드리드 B 팀에서 1년 반동안 감독직을 수행하기 전 카를로 안첼로티의 수석코치로 재직했었기에, 지단이라면 훈련장 분위기를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첫 리그 경기에서 데포르티보를 5-0으로 무너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지단은 공격수들이 더 활개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번뜩이는 재능이 뛰어났던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대신해 홀딩 미드필더 카세미루를 선발로 기용했다. 선수들 개개인의 재능으로 팬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이는 부차적인 일이었다. 지단에게 있어 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리피에게 배웠듯이, 경기를 승리하는 데 모든 집중력을 쏟는 것이었다.
또한 지단은 부임 후 곧바로 체력 훈련량을 늘렸다. 이를 위해 그는 유벤투스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이탈리아의 베테랑 트레이너 안토니오 '채찍' 핀투스를 데려와 선수들에게 더욱 고된 훈련을 시켰다. 두 사람은 핀투스가 1990년대 중후반 유벤투스의 체력 코치였던, 그 악명 높은 잠페리오 '해병' 벤트로네 밑에서 일했을 때부터 서로를 알고 지냈다. 벤트로네의 좌우명에는 "죽어라, 일단 다 하고서"나 "승리는 강한 자에게 돌아간다" 등이 있다.
지단은 1996년 보르도에서 이적해 온 후 처음 맞는 벤트로네의 프리시즌 체력 훈련을 겪고 나서 받은 충격에 대해 회상했다. "디디에 데샹이 제게 체력 훈련에 대해서 말해주긴 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끔찍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훈련을 받으면 너무 피곤해서 훈련이 끝날 무렵에는 종종 구토를 하곤 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 잘 적응한 지단은 전술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가지는 않았다. 카세미루를 통한 더 많은 태클 시도, 그리고 더 많은 활동량을 통해 마드리드의 수비력은 한층 탄탄해졌다. 그해 6월 밀란에서 빅 이어를 들어올린 마드리드는 7번의 토너먼트 경기에서 5번이나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들의 성공 가도는 다음 두 시즌 동안 8개의 트로피를 획득하며 이어졌다. 특히 핀투스의 지도 하에 프리 시즌을 끝마쳤던 첫 시즌인 2016-17 시즌에는 그 희귀한 챔피언스리그-라 리가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선수들이 합류하기도, 떠나가기도 했지만 전술적인 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디 어슬레틱은 지단이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있던 두 시즌 동안 그의 기자 회견에 100회 이상 참가했다. 그리고 포메이션이나 팀의 시스템에 대한 질문들은 명쾌한 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드리드의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 자세한 답변을 기대한 기자들은 종종 쓴웃음을 마주해야 했다.
2016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3-0으로 승리한 후, 지단은 "우리는 4-4-2로 경기를 풀어나갔는데, 제게 있어 팀의 포메이션, 예컨대 중원에 3명이 있는지, 4명이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는 개성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 팀 정도의 높은 퀄리티로 강하고, 집중력 있는 경기를 한다면, 이토록 힘든 경기장에서 플레이하더라도 별 걱정은 없습니다. 저는 매우 기쁩니다. 아틀레티코에게는 다소 받아들이긴 힘든 결과이겠지만, 여기서 3-0으로 이길 수 있는 팀은 거의 없습니다."
이 발언은 감독으로서 지단의 중요한 사상을 요약해 보여준다. 만약 자신의 선수들이 상대 선수들만큼이나 건강하고 헌신적이라면, 마드리드는 자신들의 우월한 퀄리티로 자주 승리를 챙겨갈 것이다. 이는 매우 세밀한 접근 방식을 갖고 있는 과르디올라나 클롭과 대비했을 때 지나치게 단순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실제로 지단이 현대 전술이나 전술적 접근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비판이 다소 있기도 했다.
또한 지단의 접근법은 1990년대 후반의 유벤투스나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처럼 아주 큰 구단에서만 적용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루카 모드리치, 혹은 세르히오 라모스와 같은 슈퍼 플레이어들에게 정확히 어떤 식으로 경기를 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선수들에게 반드시 해 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일러주고 스스로 해내도록 만든다.
이런 '선수에게 속삭이는 (player-whispering)' 방법은, 지단의 유벤투스 시절 마지막 2년 동안의 감독이었던 안첼로티가 자주 사용하는 접근법이다. 마드리드 선수로 뛰던 중 만났던 5명의 감독들 중 그에게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준 비센테 델 보스케는, 과도한 전술 지시로 선수들을 괴롭히려 들지 않은 또 다른 감독이다. 꽤나 엄격한 '규율주의자'인 리피 또한 이런 식의 접근법을 선호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리피는 2002년에, "물론 선수들에게 공격 작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 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한 경기에서 제 가이드라인을 완벽하게 따르리라고 기대할 순 없어요. 지단, 델 피에로 그리고 비에리 같은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어떻게 그 정도 되는 선수들한테 '감독님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골을 넣어야 해.' 라고 생각하게 하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이는 리피가 최근 몇 년 간 계속해서 되풀이해온 메세지로, 특히 한 번은 지단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어떤 감독도 지주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칠 수는 없어요. 훌륭한 선수들을 지도하는 감독이라면, 단순히 선수들에게 어떤 특정한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일깨워주고, 필요한 멘탈을 길러주고 팀을 위해 스스로를 바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깨닫게 해 주면 됩니다."
그러나 작년 3월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 재부임한 지단은, 이전보다 팀적인 움직임에 더 신경쓰고, 또한 리피가 강조했던 왕성한 활동량과 팀의 멘탈리티를 선수들에게 더욱 주지시켰다. 이는 한 시즌에 50득점을 보장해 줄 뿐 아니라 팀원 모두가 오프 더 볼 상황에서 더 많은 활동량을 가져갈 것을 주문할 수 있는 선수인 호날두가 더 이상 없다는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델 보스케와 안첼로티와 함께 일하면서, 자신들에게 압박이 주어지지 않으면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얼마나 느슨해지는지를 알게 된 지단 스스로의 경험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핀투스가 콩테의 인테르 사단에 합류했기에, 지단은 2018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그레고리 듀퐁 코치를 영입했다. 이는 가레스 베일을 포함한 선수들을 최적의 몸상태로 돌려놓기 위한 결정이었다.
매우 안일했던 2018-19 시즌이 지나고, 올 시즌 마드리드는 다시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이전보다 적은 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 27번의 라 리가 경기에서 19실점만을 허용했는데, 이 중 16실점만을 허용한 티보 쿠르투아는 리그 최고의 선수로서 '사모라 상'에 다가가고 있었다. (2019-20 시즌이 중단된 지금 쿠르투아가 이 상을 수상해야 한다.)
이러한 끈끈한 수비력은 큰 경기에서 특히 부각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가장 큰 국내 라이벌 두 팀,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한 5번의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공격 능력을 희생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5번의 경기에서의 480분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단 3득점에 그쳤으며 (아틀레티코와의 스페인 슈퍼 컵 결승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갔다가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27번의 리그 경기에서의 49득점은 구단 역사적으로도 꽤나 적은 수치다.
물론, 지난 여름 새로운 갈락티코 영입생인 공격수 에당 아자르가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아주 미미한 임팩트만을 남긴 것이 한 몫 하긴 했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함을 강조한다는 점은, 왜 베일과 하메스가 다시금 주전에서 밀렸는지, 그리고 현재 지단의 플레이스타일을 가장 빼닮은 선수인 이스코가 왜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된다.
유벤투스에서 리피는 4-3-1-2 포메이션을 통해 지단을 기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단은 경기 내에 거대한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비록 때로는 측면이나 깊이 내려앉아서 뛰기도 했지만 말이다. 감독으로서의 지단은 단 한 번도 이스코에게 베스트 11의 한 자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활달한 이스코는 다이아몬드의 꼭짓점에서도 뛰었고, 4-3-3의 윙으로도,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하지만 출전 시간만큼이나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도 잦았다.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요구하는 베르나베우의 관중들은, 현재 지단의 실리적인 접근법을 큰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구단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즈도 관중들과 같은 생각이다. "지단은 재능 자체도 뛰어나지만, 희생할 줄 알며 완벽함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뿐 아니라 승리와 우승컵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승리가 전부다'라는 생각은 리피 또한 기쁘게 동의할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무난한 가을을 보내고 2020년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시작하면서 지단의 플랜이 아주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휴식 기간 직전에, 레알 마드리드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7경기에서 4번의 패배를 기록했다. 또한 그 중 무실점 경기는 2-0으로 승리했던 엘 클라시코 경기뿐이었다는 사실은, 탄탄했던 팀이 심하게 삐걱거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2월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1차전 경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었는데, 특히 팀 선발 명단과 경기 접근 방식이 비판을 받았다. 일부 스페인 축구 전문가들은 지금의 시즌 중단 기간이 지단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바꾸며 대응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단은 1990년대 후반 유벤투스에서 배운 것들을 너무 많이 바꾸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리피는 이런 말을 했다.
"지주는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 이탈리아를 조금 담아두고 있을 겁니다. 그는 저와 안첼로티 같은 이탈리아 감독들에게 배웠죠. 저는 그의 선수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발전에 이탈리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단의 레알 마드리드를 관심있게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이 칼럼에 공감하시는 부분이 꽤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에 입각해서 지단은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를 아주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편. 지단이 무관인 시즌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이러한 지단의 접근법을 레알 마드리드는 꾸준히 신뢰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