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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4/03 16:02:56 |
Name |
글곰 |
Subject |
[분석] 효자테란과 공공의 적, 그들의 몰락에 대해 |
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어떤 스포츠든 간에 영원한 절대 강자는 없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이들도 새로운 강자나 신예에게 밀려나곤 합니다. [강자]라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이들의 견재를 많이 받는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며, 또한 그 누구라도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처럼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종목은 그 변화가 매우 심합니다. 예전의 강자가 몰락하기도 하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신예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기도 합니다.
최근 스타크래프트에서 '몰락'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빛을 바래 가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최강자는 아닐지언정 분명 강자로 군림한 이들이었고, 그 특유의 개성으로 인해 많은 팬들을 보유한 두 선수입니다. 한 명은 헥사트론 드림팀의 효자테란, 처절테란, 송금테란 베르뜨랑 선수이며 다른 한 명은 한빛소프트의 삼지안 저그, 공공의 적, 경락맛사지 박경락 선수입니다. 오늘은 이 두 선수에 대한 설을 좀 풀어보려 합니다.
베르뜨랑 선수는 [드림팀 편애 모드]인 제게 특별한 선수입니다. 그는 세르게이 선수와 더불어 제게 컬쳐쇼크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 준 선수이고, 새로운 마인드를 보여 준 선수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국내 선수들보다 손놀림이 느린 그는 세세한 마이크로 컨트롤보다 판 전체를 컨트롤하는 자신의 플레이 방식을 창안해 냅니다. 그의 상징은 커맨드센터. 그의 신념은 [다수는 소수를 이긴다]입니다. 언제나 빠르게 멀티를 가져가고, 언제나 많은 멀티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받는 초반의 압박을 그 특유의 [처절모드]로 방어해 내고, 이윽고 상대보다 많은 물량을 앞세워 맵 전체에서 대규모 난전을 벌입니다. 동시다발적인 전투가 이어질수록 마이크로컨트롤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결국 상대보다 많은 자원을 가진 자가 승리한다는 전쟁의 제 1법칙은 그대로 증명됩니다. 베르뜨랑 선수가 [판 전체를 컨트롤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그 특유의 운영으로 자신의 단점과 상대의 장점을 최대한 줄인 후 승리를 거머쥐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베르뜨랑 선수는 5회 연속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고향의 어머님께 송금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박경락 선수는 조-진-락 3대 저그 중 한 명입니다. 그의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물량형에 가까우며 소수 병력을 운용한 게릴라전에 능한 선수입니다. 특히 테란을 상대로 한 그의 드랍 중심 플레이는 소위 [경락 맛사지]라고 불리우며 상대 테란을 몹시 괴롭힙니다.
저그는 해처리의 중앙집중식 병력생산이라는 특성상, 일꾼과 병력을 동시에 뽑을 수 없습니다. 이는 저그의 필연적인 딜레마입니다. 많은 자원을 얻기 위해 일꾼 생산에 주력하면 병력이 그만큼 줄어들고, 이는 곧 전투에서의 패배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딜레마를 박경락 선수는 게릴라전으로 해결합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물량형 선수입니다. 드론을 많이 뽑고, 그만큼 병력은 적게 뽑습니다. 대신 그 병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줍니다. 정면승부는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드랍 위주의 게릴라전으로 상대를 괴롭힙니다.
럴커와 히드라, 저글링이 테란 본진 이곳저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지면 상대는 모아 놓은 병력을 진출시키는 대신 본진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렇게 게릴라전에 능한 선수이기 때문에 상대가 멀티를 가져가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멀티를 가져간다는 것은 곧 게릴라전에 노출되는 약점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포톤 캐논이라는 전천후 방어탑이 없는 테란은 더 그렇습니다.
그렇게 그의 플레이에 휘둘리다 겨우 본진을 튼튼히 한 테란이 진출에 나서면 박경락 선수는 이미 많은 멀티를 가져간 상태고, 자원의 우위에서 나온 물량으로 상대를 압도합니다. 그래서 그는 종족 상성에도 불구하고 테란을 잘 잡기로 유명한 저그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선수는 최근, 매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온게임넷과 엠비시 게임 양대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고, 특히 온게임넷에서는 듀얼의 사나이라 불리우며 5회 연속으로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한 베르뜨랑 선수. 하지만 지금 그는 듀얼토너먼트와 챌린지리그에서 연이은 패배를 겪으며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입니다. MBC게임에서는 마이너리그에 올라 있지만, 프리미어 리그 예선에서도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박경락 선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그라는 종족를 떠받드는 3대 영웅 중 한 사람은 그는 현재 온게임넷-MBC게임 어디에도 자신의 명함을 내밀지 못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프리미어 리그 2차 예선에는 올라 있지만, 본선까지 진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그의 분위기는 너무나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들이 왜 몰락했는가?
저는 그 가장 큰 이유를, 그들의 개성(스타일)을 파악당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베르뜨랑 선수와 박경락 선수는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며, 물량형에 가까운 선수들입니다. 초반에 병력보다 일꾼을 우선시하는 타입이며, 그에서 비롯하는 위기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막아냅니다. 베르뜨랑 선수는 일꾼의 체력이 강하다는 테란 특성을 이용해 일꾼을 다수 동원한 [처절모드]를 발동시키며, 박경락 선수는 버로우 유닛이자 스플래쉬 대미지 유닛인 럴커의 특성을 이용해 [경락맛사지]를 발동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의 플레이가 전체적인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수 병력으로 상대의 다수 병력을 견재하며 장기적으로 상대보다 많은 자원을 가져간다]라는 마인드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장기적인 자원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택한 방법은 매우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개성으로 [강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오랜 기간 동안 강자로 있자, 많은 선수들이 그들의 플레이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그들의 약점을 찾았습니다. 베르뜨랑 선수는 빠른 멀티를 시도하다 상대의 병력에 밀려 버리기 일쑤이며, 박경락 선수는 초반 병력 생산을 등한시하다 벙커링 등 상대의 빠른 공격에 무력하게 패하곤 합니다. 그들의 플레이의 큰 틀(자원 우위에서 오는 궁극적인 병력 우위)는 그 위력을 채 발휘하기도 전에 극심한 타격을 받고 그대로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나름의 생각이지만, 그들은 이제 자신의 플레이에 [새로움]을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타일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개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혀 새로운 방식의 경기 운영을 [추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르뜨랑 선수의 빠른 벙커링이나 투스타 레이스, 박경락 선수의 9드론 등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플레이를 갈고 닦아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전략 선택의 폭]을 넓히고, 상대에게는 자신의 전략 전술을 파악하기 힘들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언제나 늘 하던 대로만 하면 결국 상대에게 자신을 완전히 분석하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는 것밖에 안 됩니다. 상대가 '베르뜨랑 이 타이밍에 멀티하겠지', '박경락 이 타이밍에 앞마당 가져가고 있겠지'라고 추측했는데 그대로 플레이하고 있다면 정보전에서 이미 완벽하게 박살난 꼴이 되고 맙니다.
물론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며 또 하나의 개성을 만든다는 것은 극심한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각 방송사에서 본선 탈락은 오히려 연습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저 두 선수의 부활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의 개성을 유지한 채, 또 다른 모습을 겸비해 부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랍니다. 그래서 베르뜨랑 선수가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상금을 프랑스의 어머니께 송금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박경락 선수가 온게임넷 결승에서 테란을 물리치고 태꼰부이 감독님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글곰 이대섭. www.gom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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