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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4/04 13:06:42 |
Name |
작고슬픈나무 |
Subject |
[소설 프로토스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supply 7/10) |
꽤나 다급한 목소리였다. 옥상의 반대쪽 끝에 셔틀 한 대가 떠 있었고, 거기서 달려오며 손짓하는 자가 보였다.
"킹덤 아저씨!"
퓨리가 반가운 목소리를 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는 성춘과 성제 역시 따라갔다. 투명하게 빛나는 안경알 속에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파일럿인가. 파일럿들, 그것도 경력이 쌓인 파일럿은 눈동자가 점점 맑아졌다.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전장을 공중에서 지켜보는 파일럿들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라고 제우스 녀석은 말하곤 했지만, 도대체 우리 프로토스 족의 발달된 과학이 파일럿들을 시각에 의지한 채 전투에 임하도록 할 거란 생각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그보다는 많은 죽음과 그 죽음이 만들어낸 승리 속에 자기의 목숨이 부지되는 걸 지켜보며 흘리는 눈물 때문이라고 성춘은 믿고 있었다. 파일럿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감상적이 된다고 놀림 받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구, 젠장.
"다친 데는 없나? 이런, 자네 많이 아픈가? 퓨리 넌 괜찮니?"
"전 견딜 만 합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아저씨 이름은 킹덤. 아비터 502호기 파일럿이지. 지금 설쳐대는 저 녀석의 스... 음, 아무튼 우리 아이우 최고의 아비터 파일럿 중 한 분이야. 현자의 탑에서 수련 받는 아비터 파일럿들은 모두 이 분이 길러낸 거나 마찬가지!"
"퓨리야. 지금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모두 셔틀에 올라타라."
"킹덤 아저씨. 저도 이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긴 하지만, 지금 이 곳에 있는 분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니. 이 모든 일이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겁니까?"
성춘 역시 이 무시무시하다 못해 지긋하기까지 한 전장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이 곳에 아직 머물고 있는 템플러들은 어찌할 건지 알지도 못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제법 당돌하기까지 한 질문에 킹덤의 얼굴이 굳었고, 셔틀에서 상승막이 비치기만 기다리던 성제도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걷는다."
"그건... 무슨?"
"더 이상은 나중에 얘기해주겠다. 나를 믿어라. 지금은 이 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아저씨.."
"이봐 성춘. 이래봬도 이 아저씨의 한 마디는 장로회의에서도 무시당하지 않아. 아저씨가 이렇게 얘기할 때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일단 셔틀에 타자."
퓨리의 강압에 가까운 말에 성춘은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셔틀 하부 베이에서 푸른 색 상승막이 비취더니 넷은 어느 새 셔틀 안에 들어와 있었다. 퓨리는 들어오자마자 셔틀 안에 있는 치유조에 들어갔다. 2미터 정도의 기다란 유리 원통형의 치유조에는 한 번도 쓰지 않은 치유액이 가득 차 있었다. 킹덤은 퓨리가 치유를 받으면서도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외부 스피커를 퓨리의 귀에 끼우도록 했다.
"파일럿. 입력해둔 좌표로 전속 항진. 워프를 시도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전속 상승. 워프 개시점에 다다르면 다시 보고하도록!"
"워.. 워프? 아니 아저씨.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워프예요?"
"퓨리야, 그리고 성춘, 성제. 잘 들어라. 지금 우리는 행성 아이우를 떠난다."
킹덤의 검고 맑은 눈에 습기가 돌기 시작했다. 성춘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 건지도 모르고 다만 킹덤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림토가 이 모든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이란 건 너희들이 목격했으니 잘 알고 있겠지. 사이오닉 퀸 소운을 향한 그의 애정이 심상치 않다는 건 나도, 장로들도 알고 있었으나 차마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구나. 그는 오로지 그의 연인의 예정된 운명을 거스르게 하기 위해서 저 저능한 저그족을 우리들의 신성한 현자의 탑에 불러들였다. 그것도 장로회의와 함께 전 행성의 템플러들이 모여있는 때에 맞춰서. 또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아이우를 둘러싸고 저그족의 대규모 공격이 벌어지는 중이다. 그래서 현자의 탑을 지키기 위해 달려올 전사들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 그런! 그럼 현자의 탑은?"
"현자의 탑은... 이제 바로 너다! 너 성춘, 성제, 그리고 퓨리. 너희들이 바로 현자의 탑이다. 너희들은 선택된 존재들이다."
"무, 무슨 얘기예요? 전 아직 졸업도 안 했고, 성제도 마찬가지라구요."
"알고 있다. 저 저능한 저그 벌레들은 현자의 탑만 없어진다면 아이우를 점령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건 어쩌면 맞는 생각일 수도. 하이 템플러의 사이오닉 스테이지와 할루시네이션, 다크 템플러의 공간왜곡과 엄청난 공격력, 또한 다크 아콘의 알려지지않은 마법까지! 커세어와 아비터의 능력도 모두가 현자의 탑에서 길러지는 것. 너희들은 목격했으니 알겠지만, 이미 모든 기록들과 영혼의 그릇들은 파괴당했다. 또 그 속에 모여있던 행성의 모든 템플러들도 죽음을 당했다. 나를 비롯해 회의중이던 장로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지금 이 순간으로 우리의 행성 아이우는, 아이우는... "
"아저씨, 서, 설마...?"
"네... 생각대로다. 퓨리. 이제 아이우는 없다. 아니 적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현자의 탑은 선조들의 위대한 과학으로 지어진 건물. 붕괴와 함께 우리의 행성을 둘러싸고 있는 차원에 거대한 틈을 만들게 돼있다. 장로들은 그 기능을 막을 수 있었으나, 막지 않기로 했다."
"뭐야, 그런 기능이 있다면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성춘아, 세상 모든 것에는 좋은 면이 있다면 나쁜 면도 있기 마련이란다. 일단 차원의 틈에 숨은 아이우는, 다크 아콘의 숨겨진 고대마법이 아니면 다시 나올 수 없다. 그 마법은 잊혀진 지 오래, 장로들은 확률이 극히 미약한 패를 택한 것이지."
"그, 그런? 그 마법이 없다면, 그건 자살이잖아요. 왜? 왜 그런 거죠?"
킹덤은 대답 대신, 아까부터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내려놓았다. 고문서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 중에서 다 해어져 너덜너덜해진 붉은 표지의 책을 꺼내 들었다. 제목도 없었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책이었다.
"그럼, 그것이..?"
"그래, 이 속에 그 마법이 쓰여있다.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템플러들은 셀 수 없을 정도. 모두가 이 책에 쓰인 글씨를 해독했다. 그러나, 아무도 비밀에 다가서지는 못 했다. 마지막으로 그 마법을 알았던 다크아콘은 틀림 없이 이 책에 그 비밀이 쓰여있으나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알 수 없으리라고 얘기했다고 전해진다. 장로회의에서는 이 책의 비밀을 열 마지막 도전자로 너를 선택했다."
"에? 왜 저를 봐요?"
"서, 설마 성춘 형을?"
"성춘. 승려 학교 창설 이래 최고 성적 기록 보유자.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가문. 레인 가문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너도 알고 있겠지?"
"아니요. 모르는데요."
"아. 참. 넌...."
"망설이실 필요 없어요. 제가 유복자에다 고아라고 말씀하시려는 거죠? 이제 그런 일에 상처받을 만한 나이는 지났거든요."
"음. 그래. 아무튼 가문의 비밀에 대해선 전해 듣지 못한 모양이구나. 너의 가문 레인 가문이야말로 마지막 다크아콘을 소환했던 가문이다. 마지... 응?"
틀림 없었다. 조금 전부터 귓가에 스치는 소리, 틀림 없이 뭔가 부수는 듯한 소리였다. 점점 커지는 소리가 이제 킹덤의 얘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성제에게도 들렸는지 녀석은 다시 떨기 시작하고 있었다. 셔틀 뒤, 상승막 사출구에 가려져 있는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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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이.. 불펌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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